잔혹한 제목 속의 간절함
잔혹한 제목 속의 간절함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07.26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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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 초능력 아이 없애라...잔인한 인간

[북데일리] <13 계단>의 다카노 가즈아키의 신작이 화제다. <제노사이드>(2012. 황금가지). 이 단어에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떠올리는 건 아뿐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잔인한 제목을 선택한 건 그만큼 간절하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표지에서 전해지는 묘한 기운도 그렇다. 이 소설은 읽기 전부터 시선과 생각을 사로잡는다.

소설은 두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의문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약학 대학원생 일본인 고가 겐토와 불치병에 걸린 아들의 삶을 연장시키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용병 조너선 예거의 이야기를 교차로 들려준다. 예거는 콩고에 잠입해 바이러스에 걸린 피그미족과 인류학자를 암살하라는 임무와 이상한 생물을 발견한 즉시 죽이라는 임무를 받았다. 내키지 않지만 아들의 치료비를 구하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 시간 겐토는 자신을 도와주는 한국인 정훈과 함께 아버지가 남긴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의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자료를 검토한다.

콩고에서 발견된 바이러스의 실체와 이상한 생물의 존재는 무엇일까. 모든 게 궁금할 뿐, 소설은 답을 쉽게 말해주지 않는다. 소설을 읽어가면서 함께 추리하고 함께 생각하자는 의도인지도 모른다. 콩고와 일본의 동태를 지켜보는 미국이 있다는 건 더이상 놀랍지 않다. 모든 전쟁의 끝에는 미국 정부가 있으니까.

그랬다. 예거의 팀이 콩고에서 죽여야 하는 피그미족은 바이러스는커녕 미국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않았다. 미국이 두려워 한 건 진화된 생물이었다. 피그미족에서 태어난 한 아이 아키리와 그 아이를 지키려는 인류학자 피어스를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 한데 왜 한낱 어린 아이인 아키리를 두려워하는 것일까. 그건 놀랍게도 돌연변이로 태어난 아키리는 인간 이상의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키리는 인간에게 두려운 존재였던 것이다.

아키리는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의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피어스는 겐토의 아버지와 친구였고 아키리의 도움을 받아 약을 개발하려고 했던 것이다. 겐토는 감시를 받지만 피어스를 통해 아키리의 존재를 확인하고 반드시 약을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소설은 미국, 콩고, 일본을 오가며 긴장을 더한다. 모두를 죽이려는 쪽과 모두를 살리려는 쪽의 싸움은 마치 선과 악의 대결구도처럼 보지만 과연 그럴까. 콩고에서의 아키리를 탈출시키는 과정은 영화의 장면을 보는 듯하다. 어떤 설명도 없이 끌려와 사람들 죽이고 탈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잔혹한 상황이 소설 뿐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무서운 것은 지력이 아니고, 하물며 무력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인격입니다.” p. 415

“인간은 자신도, 다른 인종도 똑같은 생물종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네. 피부색이나 국적, 종교, 경우에 따라서는 지역사회나 가족이라는 좁은 분류 속에 자신을 우겨넣고 그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이라고 인식하지. 다른 집단에 속한 개체는 경계해야 하는 다른 종인 셈이야. 인간이라는 동물의 뇌는 태어나면서부터 이질적인 존재를 구분하고 경계하게 되어 있어. 그리고 난 이거야말로 인간의 잔혹성을 말해주는 증거라고 생각하네.” p. 473~474

소설은 놀랍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보(단순하게 약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인류 미래에 대해, 한국에 대해, 컴퓨터와 무기 등 다양한 분야)를 수집했을지, 이야기를 만들며 얼마나 깊은 고민과 애정을 쏟았는지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리고 그는 질문을 던진다. 진화와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미래엔 과연 어떤 인류가 남을 것이며 어떤 삶이 이어질까.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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