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닌 다른 내가 존재한다면?
내가 아닌 다른 내가 존재한다면?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07.11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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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오에 겐자부로가 선택한 소설

[북데일리] 한 번쯤 나를 대신할 내가 있다며 좋겠다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만약, 그런 세상이 온다면 어떨까? 호시노 도모유키의 <오레오레>(2012. 은행나무)는 그런 세상을 만날 수 있다. 그러니까 나 아닌 수없이 많은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가 자신의 작가 생활 50년을 기념해 만든 '오에겐자부로상' 2010년의 수상작이다. 오에 겐자부로가 직접 선정한 작품이다.

소설은 가전제품 매장에 다니는 주인공 히토시가 맥도날드에서 한 남자의 휴대폰을 훔치고 벌어진 일이다. 남자(다이키)의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아들 행세를 하며 돈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둘러댄다. 히토시를 아들로 여긴 어머니는 돈을 보낸다.

다음 날 다이키의 어머니가 집으로 찾아오고 자신을 아들로 착각하면서 히토시의 삶을 달라진다. 아들의 얼굴을 몰라보는 게 아니라 히토시가 다이키가 된 것이다. 다이키가 어떤 가정에서 자랐는지 알게 된 히토시는 자신의 부모님을 떠올린다. 갈등이 심해 독립한 후 2년 전 연락을 끊은 집을 찾은 히토시는 그곳에서 자신의 행세를 하는 남자를 만난다. 심지어 어머니는 아들인 자신을 경찰에 신고한다고 한다.

나는 다이키가 되고 가짜 나는 히토시가 된 것이다. 다이키가 된 나는 히토시가 된 나에게 상황을 설명한다. 그러나 집이 싫어 나갔으니 다이키로 살면 되지 않겠냐는 대답뿐이다. 그러니까 히토시가 된 나 역시 또다른 나였던 것이다. 가전제품 매장에서 카메라를 파는 나, 시청에서 생활대상자를 선정하는 나, 대학원생인 나까지 존재한다. 모든 게 혼란스럽지만 나를 이해하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그들과 어울린다. 같이 술을 마시고 등산을 하고 고민을 나눈다.

하루가 다르게 나는 증식한다.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 어디서든 나를 찾을 수 있다. 억지로 공부를 하고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고 그저 그런 날들을 보내는 것이다. 진심을 알 수 없는 삶, 어떤 목적만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었다. 얼굴을 다른 나, 직업이 다른 나, 나이가 다른 나를 한 눈에 알아보는 나, 과연 진짜 나는 누구인지 찾을 수 있을까.

‘나 자신이 속이 빈 껍데기가 된 것 같은 이 기분은 지금이 거짓 대화 때문만은 아니다. 오랫동안 반복해온 이런 거짓된 관계가 축척된 결과일 것이다. 그랬다. 나는 살기 위해서 이런 즉흥극만을 계속해왔다. 부모와는 언제나 이런 대화였다. 형식적일 뿐이고 서로의 절실함은 건드리지 않는 무의미한 대화. 부모하고만 그런 게 아니다. 형제나 친구나 직장 동료나 다른 모든 인간과의 관계에서 나는 이런 즉흥극의 관계밖에 쌓아오지 않았다.’ p. 268

소설은 유일하다고 믿었던 내가 아닌 또다른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소재에서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다. 아니,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라고 한다. 획일화된 관계와 소통이 단절된 우리 사회를 보여준다. 대화가 사라진 사회, 가족이 붕괴되는 세상의 단면을 고발하는 것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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