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이 일상이 된 사회의 부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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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06.28 1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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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외면하는 벽'...산업화 부작용 다룬 소설

[북데일리 ]세상은 빠르게 발전하고 변화한다. 가전제품은 물론이고 모든 정보를 한 손에서 만날 수 있는 스마트폰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능을 선보인다. 그 놀라운 세상을 쫓아가느라 사람들은 그저 달린다. 앞만 보고 달린다. 그러다 옆이나 뒤를 보게 되는 건 지인의 죽음이나 거대한 자연 재해처럼 충격적인 사건 사고가 있을 때다. 내가 아닌 타인에 대한 관심과 염려도 그렇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살아온 것일까. 조정래는 <외면하는 벽>(2012. 해냄)을 통해 묻는다.

8편의 단편 소설 속 인물은 1970년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일했고, 착실하게 직장 생활을 했고, 잘못된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냈고, 변화해야 한다고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소설은 그 시절의 가려진 삶을 세세하게 보여준다. 그러니까 발전이라는 빛에 가려진 그림자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아파트가 지어지고 시골 곳곳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겪어야 하는 좌절과 절망을 말이다.

절망의 크기는 <진화론>의 주인공 동호가 가장 컸을 것이다. 집 나간 엄마를 찾아 나선 열 네 살 동호가 서울에서 만난 세상은 지옥이었다. 고향에 남은 할머니와 두 동생을 위해 엄마도 찾아야 했고 돈도 벌어야 했던 동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상처와 배신감만 남았다. 그 넓은 세상에 믿을 만한 어른은 찾을 수 없었고 그들은 어린 동호에서 모두 비열했다. 그러니 동호의 삶이 어긋난 건 세상 책임 것이다.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만든 <마술의 손>은 씁쓸하면서도 서글픈 현실을 마주한다. 산골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고 텔레비젼의 시대가 열린다. 모두가 마술 상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이 집 저 집 할부로 물건을 사들이고 아이들은 더이상 함께 놀지 않는다. 누구나 꿈꾸던 현실을 마주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뤘지만 너무 아프다. 지금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 속 텔레비젼이 스마트폰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누군가는 어쩔 수 없다고 말 할 것이다. 편리한 변화에 따른 부작용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세상이 그러하니 그 흐름을 따라가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40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변하지 않은 건 또 있다. 옆에서 일하던 동료, 윗집에 사는 이웃과 소소한 일상을 나눌 여유조차 없이 분주하게 돌아가는 삶이 그것이다. 아니, 외면하는 삶이 맞겠다.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일이니까, 나만 아니면 괜찮다는 말로 타협하는 것이다. 직장 동료가 죽고서 그에 대해 아는 거라곤 이름과 나이 뿐인 사실에 절망하는 <우리들의 흔적> 속 주인공과 다르지 않다. 어디 그뿐인가. 단편 <외면하는 벽>에선 한 아파트에 사는 노인의 죽음에 곡을 하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말로 슬픔을 외면하기도 한다.

‘사무실, 거기는 사무실이었다. 유흥장이나 사교장이 아니라 사무실이었다. 거기에서 모두는 사무를 보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무런 어색함도 불편함도 없었다. 오히려 이것저것 서로를 알게 되면 사무를 수행해 나가는 데 번거롭고 불편하게 될지도 모른다. 거기서는 오로지 정확하게 신속한 사무 기능만 갖추면 그만인 것이다. 나는 비로소 내가 커다란 기계의 한 개 부속품인 것을 깨달았다. 월급 생활 1년 반 만에 보게 되는 내 모습이었다.’ p. 93 - 우리들의 흔적 중에서

세상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인 우리는 서로 잘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작가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대책을 세워야 할 것들을 외면하고 있는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과 마주하게 한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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