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판사가 쓴 추리소설
현직 판사가 쓴 추리소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06.26 0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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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한 캐릭터, 놀라운 반전 눈길

[북데일리] 법을 집행하는 현직 판사는 누구보다도 법에 대해, 범죄 구성 요건에 대해, 범인의 심리 대해 알 것이다. 어쩌면 추리소설 작가보다도 더 추리소설을 잘 쓸 수 있는 충분조건을 갖춘 이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매력적인 책, 현직 판사이자 작가인 도진기의 <순서의 문제>(2012. 시공사) 가 그것이다.

책은 진구라는 인물이 간접, 직접적으로 개입된 사건을 풀어 나가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단편이기는 하나, 모두 진구가 이끌어 간다. 사건의 소재는 뉴스에서 한 번쯤 들어 본 실종, 절도, 보험, 살인 등 다양한 사건을 만날 수 있다.

이 소설이 특별한 점은 추리소설 같지 않다는 점이다. 범인과 경찰(혹은 탐정)의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대결 구도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충분히 긴장감을 주고 긴박하게 흘러가는 건 바로 진구란 인물 때문이다. 경제학을 전공했고 법학을 복수 전공했지만 중도에 대학을 포기한 진구가 때로 협박자이고 제보자이고 해결사이기 때문이다.

읽다 보면 우리 주변에서 이런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닐까 섬뜩하기도 하다. 특히 나를 사로잡은 단편은 완벽한 알리바이를 내세워 완전 범죄를 꿈꾼 <뮤즈의 계시>로 진구가 계획적인 범죄에 포함된 격이다. 내연녀와 공모하여 아내를 죽인 남자가 진구와 여자 친구 해미를 알리바이의 증인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해미가 백화점 아르바이를 하면서 친해 진 언니의 집들이에 진구와 함께 초대받은 것이다. 커플과 안면이 있었지만 내키지 않는 자리였지만 해미가 좋아해서 진구는 수락했다. 서울을 벗어나 남양주의 전원주택에서의 집들이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 시각 사건을 발생했고, 유력한 용의자인 두 남녀에겐 해미와 진구라는 강력한 알리바이가 있었던 것이다.

죽은 아내가 이혼을 해주지 않았다는 범행동기와 범행도구까지 찾았으나 해미와 진구가 검사에겐 걸림돌이었다. 해서 알리바이를 위해 해미와 진구가 위증을 하는 게 아니냐 추궁한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뿐인데 위증이라니, 진구는 본격적으로 이 사건을 파헤친다. 남양주의 전원주택을 살피고, 사건 당일 자신과 함께 보낸 범인들이 행적을 차례로 떠올린다. 그러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을 찾아내고 증인 심문의 자리에서 자신이 보고 듣고 행동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진술하면서 검사가 놓친 점을 말한다.

그 외에 이상한 남자의 행적을 통해 하나의 사건을 상상하고 추리하는 <대모산의 너무 멀다>,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추악하지 보여주는 <티켓 다방의 죽음>, 여성 납치 사건을 소재로 뇌가 기억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진실일까 묻는 <신(新) 노란 방의 비밀>도 재미있다. 소설에선 경찰을 속이고 사건 현장을 출입하고 증거를 조작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작가 이전에 판사이기에 하나의 사건에서 현장 보존과 증거가 얼마나 중요한지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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