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눈으로 바라본 요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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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06.24 2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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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값하는 개, 황구의 구수한 촌평

[북데일리] 선하게 웃고 있는 듯 보이는 개가 친근하다. 표지가 말해주듯 제목도 <개님전>(2012. 시공사)이다. 그렇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개님이다. 그러니까 진도개 황구가 바라본 사람 세상과 개가 사는 세상의 이야기다.

황씨 할아버지네 집에 사는 황구는 늙은 어미 개다. 황구를 가족처럼 여겼던 주인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마지막 새끼인 노랑이와 누렁이도 다른 곳으로 가고 혼자 남았다. 어느 밤 누렁이가 찾아오면서 황구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황구의 입을 통해 진도개의 외모적 특징, 성격, 영민함, 주인을 위한 충성심까지 진도개의 삶에 대해서 들을 수 있다. 어미 황구와 어린 새끼 노랑이와 누렁이가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아가는지를 말이다.

황구의 말투부터 재미있다. 구수한 남도 사투리는 친근하다. 노랑이와 누렁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 대한 황구의 조언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다. 그러니 개나 사람이라 살면서 지켜야 할 도리나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답게 사는 것을 잊고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꾸짖기도 한다.

“사람들도 원래는 점심을 안 묵었디야. 근디 요샌 묵더라고……. 사실 말이제 사람들은 너무 묵어. 배창시를 좀 비워놔야 하는디……. 개들은 예로부터 먹고 잪은 것 있어도 배창시가 다 찰 때까정은 안 묵었어. 그래서 위장병이 읎제. 근디 사람들은 배가 터질 때까정 묵는디야. 그래서 걸핏하믄 배아파 죽제! 배창시는 절반 쪼깐 넘게만 채우고 나머지는 넉넉하게 비워 놓는 게 좋디야. 사람이고 개고 할 것 읎이.” p. 45

단순하게 먹는 문제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끊임없이 채우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그 욕망으로 인해 결국 어떤 결과가 돌아오는지 재치 있게 풀어 놓는다. 황구가 노랑이와 누렁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양하다. 작가는 황구의 입을 빌려 먹고 사는 일, 관계를 맺어가는 일, 누군가와 사랑을 나누고 이별하는 일,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는 일에 대해 말한다.

황구가 막걸리에 취해 잠든 할아버지를 불길에서 구한 건 당연한 도리였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상여가 나갈 때 황구네 식구에게 상복을 입힌 주인 황씨 아들 내외의 마음도 같은 것이다. 진도 아리랑의 곡조에 맞춰 너나 할 것 없이 춤을 주며 함께 슬픔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이야 말로 축제가 아니겠는가.

‘풍물패들이 진도 아리랑의 박자에 맞추어 풍물을 치고, 피리 부는 사람은 진도 아리랑 곡조를 불기 시작했다. 상여꾼들 모두 상여를 내려놓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베를 잡고 앞서 가던 호상꾼들 역시 어깨춤을 추기 시작했으니. 굿이, 아니 축제가 따로 없었것다.’ p. 115

노랑이와 누렁이가 황구를 떠나는 일은 어른이 되면 부모를 떠나 독립하는 우리네 삶과 같다. 황구가 장성한 노랑이과 누렁이를 걱정하는 모습에서 늙은 부모의 마음을 읽는다. 개의 세상살이는 우리네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더러운 한 세상, 비굴한 한 세상, 사는 게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도 살아가야 할 한 세상 아닌가.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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