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알래스카에서 죽었을까
왜 알래스카에서 죽었을까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06.19 19: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 야생 사진작가...태고의 모습, 렌즈에

[북데일리] 한 장의 사진은 어떤 글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하기도 한다. 여기 사진으로 그가 사랑한 알래스카를 말하는 사람이 있다. 야생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다. 그가 남긴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마치 태고의 모습을 마주한 듯 그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문명이 닿지 않아 자연 본연의 모습이 조금씩 변화하는 신비로운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감격적인가.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 때문에 투명한 유리 벽 속에 갇힌 그들의 영혼이 울부짖는 소리를 호시노 미치오는 들을 수 있었던 것일까.

시베리아 캄차카 반도에서 야영을 하다 곰의 습격으로 사망한 그의 유작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다반. 2012)는 그가 신화를 쫓아 알래스카 곳곳을 다니며 그곳에서 만난 원주민들의 삶과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담은 책이다.

얼음의 땅, 알래스카를 사랑한 그는 큰까마귀 신화를 찾아 나선다. 전설처럼, 그저 전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원주민을 통해 알고 싶었던 것이다. 큰까마귀의 신화를 믿고 그들을 숭배하며 사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데 운명처럼 만난 큰까마귀의 후예인 밥이 들려주는 신화는 흥미롭다. 물도 빛도 존재하지 않던 세상, 큰까마귀는 가낙이라는 남자가 가진 샘의 물을 모두 마시고 날아올라 지상으로 뿌려 강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혼자만 물을 소유했던 것이고, 강을 통해 흐르는 물을 모두에게 나줘준 건 큰까마귀였다. 누군가는 그저 상상 속 이야기라 하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는 거대한 까마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호시노 미치오는 알래스카에 서식하는 극소수의 파란 곰을 보기를 바랐다. 야영을 하는 밤, 그는 글레이셔 베어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파란 곰을 보지는 못했지만 다음 글에서 그가 얼마나 곰을 사랑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보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설령 내가 미끼를 놓아 글레이셔베어를 유인한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글레이셔베어를 보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설령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나무에서, 바위에서, 바람 속에서 나는 글레이셔베어를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 무수한 진실이 우리 앞에 벌거벗겨져 끌려 나오고 온갖 신비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지금, 보이지 않는 것에는 그래서 한층 더 깊은 의미가 있다. 박물관에 깨끗하게 보존된 토템 기둥이 아니라 숲속에서 비와 바람에 닳아 썩어 가는 토템 기둥이 더욱 신성한 힘을 지니는 것처럼 말이다.’ p. 49~50

보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는 건 우리가 보고자 하는 건 외면일 뿐, 그들의 삶과 내면을 이해하고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말이 아닐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곳에서 그들이 자연과 함께 존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 맞닿은 여정을 담은 사진의 경이로움과 황홀함은 감히 뭐라 표한할 수 없다. 부디 이 모습을 오래 오래 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며,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그 풍광이 닿기를 바랄 뿐이다. 그건 호시노 미치오도 마찬가지 아닐까.

‘모든 생명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무한한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 정지한 것 같은 숲은 물론 심지어 별조차도 같은 장소에 머무르지 않는다. 나는 ‘사람이 궁극적으로 알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일만년을 여행한 별빛이 전해 주는 우주의 깊이, 인간이 먼 옛날부터 간절하게 바란 피안의 세계, 무슨 목적을 위해, 어떤 미래를 향해 살아가느냐 하는 인간 존재의 의미……. 이 모든 것이 사실은 이어져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인간이 진정 알고 싶은 것을 알고 말았을 때, 과연 우리는 살아갈 힘을 손에 넣을까? 아니면 잃어버리게 될까? 알고픈 것을 알려는 마음이 인간을 지탱해 주지만, 알고자 하는 것을 결국 알 수 없기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p. 161

식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 고래를 잡으며 사는 사람들, 빙하의 땅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의 신화로 남을 것이다. 그곳을 사랑하여 그들과 같은 시선으로 그곳을 보고 싶었던 호시노 미치오 역시 그 땅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남을 것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