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딸 '10년간 편지 문답'
아빠와 딸 '10년간 편지 문답'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06.07 2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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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무엇인가요...문학과 사상 얘기 나눠

[북데일리]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는 말이 있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무엇을 닮느냐에 따라 반응은 달라진다. 좋지 않은 습관이나 행동을 닮는다면 반가워 할 부모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부모의 대를 이어 같은 분야에 종사한다면 뿌듯함을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 거울을 보듯 닮은 부녀가 있다. 서로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함께 걸어가는 중국의 사상가인 아버지 류짜이푸와 문학가인 딸 류젠메이가 그들이다.

<삶을 안다는 건 왜 이리 어려운가요?>(글항아리. 2012) 는 1989년부터 1999년까지 10년 동안 부녀가 인생과 학문에 대해 팩스로 나눈 편지를 엮은 책이다. 제1부 사랑하라, 제2부 생각하라, 제3부 표류하라 세 부분으로 나누어 물음표로 가득한 삶에 대해 토론한다. 언제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부녀사이인데 왜 그들은 편지를 써야 했을까? 아버지 류짜이푸가 천안문 사건으로 두 딸을 중국에 남겨두고 아내와 함께 미국행을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다.

타국에 있는 아버지와 중국에 남은 큰 딸 류젠메이는 그때부터 편지로 소통한다. 두 사람의 편지는 류젠메이가 중국을 떠나 미국으로 유학을 오고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은 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문학을 공부하는 딸의 고민, 아이를 낳고 어머니가 된 후 겪는 놀라운 감동과 우울, 가까운 이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 아버지이기 이전에 인생의 선배이자 사상가에게 묻고 딸이기 이전에 문학가에게 답하는 것이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시작하는 편지글이라 다정하고 친근하지만 내용은 쉽다고는 말할 수 없다. 사상가와 문학가라는 직업이 말해주듯 편지로 나눈 내용은 다양한다. 철학과 사상, 고전, 문학, 인생에 대해 서로에게 묻고 답한다.

편지에는 특히 타국에서 바라보는 고국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이나 중국 문학에 대한 내용이 많다. 아버지와 딸이 미국에서의 삶을 선택한 이유는 다르지만 중국에 대한 애정은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외롭고 고독한 이방인이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있어 아버지는 딸에게 이런 글을 전한다.

‘평상심은 자연스러운 마음이야. 중국을 떠나온 이후에 근본적으로 나를 구원해준 것은 바로 평상심이란다. 중국에 있었을 때에는 나 역시 엄청난 명성을 얻었고 아주 활기차게 살았지. 하지만 중국을 떠난 뒤로는 단숨에 끝도 없는 적막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단다. 그런데도 내가 마음의 평정을 빨리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애당초 나 자신을 결코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야.’ p. 77

‘생명의 상태와 마음의 상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단다. 이 말의 의미는 한 사람의 즐거움과 행복은 그가 무엇을 하는지, 직위와 직함이 무엇인지에 따라 결정되지 않고 생명의 상태와 마음의 상태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란다.’ p. 173

제목처럼 삶이 절망과 고통으로 가득 차 무거울 때, ‘삶을 안다는 건 왜 이리 어려운가요?’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던 이라면 이 책을 통해 삶에 대해 이해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빛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무엇에 중점을 두고 살아야 하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 알려준다. 부와 명예만을 바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자아라는 지옥은 어디에나 존재하지. 그것은 네가 어딜 가든 너를 따라다니는 지옥이란다. 허영의 추구, 끝없는 욕망, 타인에 대한 배척과 질투의 사념, 분발하기를 멈춘 나태, 먼지 같은 성취가 빚어낸 교만 등이 모두 자아의 지옥이란다. 어쨌든 인간은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욕망(사념)이 허망하게 느껴지지. 그리고 인간이 최후에는 피할 수 없는 공허 속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간 세상의 눈부신 허영이 죄다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단다. 난 네가 청춘일 때, 자아의 지옥에 대해 깨닫기를 정말 바란단다.’ p. 98

이처럼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가르침을 주니, 인문학과 철학 강의를 듣는 기분이다. 하여 스승 같은 책이 아닐까 한다. 날짜대로 싣지는 않았지만 어느 부분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딸에게, 딸이 아버지에게 보내는 안부이며, 인생에 대한 질문과 답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인문학, 철학, 문학을 공부하고 있거나 중국 문학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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