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산책시키며 무슨 생각 할까
개를 산책시키며 무슨 생각 할까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06.04 0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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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소재...부조리한 현실 탈출 몸부림

[북데일리] 불행은 특정한 사람만을 따라 다니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뜻하지 않은 사건 사고에 휘말리게 되면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나 하고 속상해 한다. 그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불행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고 자만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 개의 불행이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왜 내게?' 라는 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2012년 세계문학상 수상작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은행나무. 2012)의 주인공 임도랑도 누군가에게 묻고 싶을 것이다. 잘 나가던 컨설턴트에서 하루 아침에 회사의 비밀을 팔아버린 스파이가 되어 노숙자와 다름 없는 신세로 전락했으니 말이다. 사랑이라 믿었던 여인이 자신을 이용하고 배신했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도랑에게는 일과 사랑의 부재만 있었던 게 아니다. 한 달 간격으로 돌아가신 부모, 자살한 큰 형, 인도로 떠난 둘째형까지 그에게는 가족도 부재였다. 어디에도 그를 받아주는 곳이 없어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해야 했다. 과거를 잊고 앞만 보고 살아야 하는데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소설의 제목 그대로 도랑은 개를 산책시키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오전에 두 시간씩 일정하게 고급 애완견을 산책시키고 저녁에는 갈비집에서 불판 닦는 일을 한다. 개보다 못한 신세를 한탄하면서도 꽤 높은 수입을 유지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였지만 찰나의 판단 실수로 그만 두게 된다. 도랑이 찾은 일은 삼손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역할대행 아르바이트로 나쁘지 않았다.

도랑은 갈비집 여직원 미향과의 관계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되고 다시 개를 산책시키는 일을 한다. 라마라는 이름을 가진 개로 신기하게도 도랑에 의해서만 산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라마는 여느 개와는 다른 특별한 개였던 것이다. 도랑은 라마를 산책시키면서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을 받으며 새로운 인생의 도약을 꿈꾼다. 도랑은 삼손과 미향과의 관계로 끝내고 싶지만 드러내지 못한다. 삼손이 운영하는 모임에 나간 도랑은 삼손의 상처를 알게 된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말이다.

매우 재미있는 소설이다.

개를 산책시키는 일이라는 특이한 소재를 비롯하여 역할대행이라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다른 현실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욕망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 상처를 가지고 있다. 부와 명예를 잃은 도랑, 가족을 모두 잃은 삼손, 가난한 집안의 가장 미향, 사랑하는 주인을 잃은 라마와 라마의 주인인 미라까지 그랬다. 상처 입은 그들은 서로에게 기대며 위로 하고 위로 받기를 원한다. 어쩌면 그들의 만남은 처음부터 우연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삼손의 말처럼 말이다.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말이 때로는 절망의 우물에 갇힌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될 것이다.

“모든 건 결국 연결되어 있으니까. 세상에 우연이라는 게 존재하는 줄 알아? 아냐, 우연은 없어. 우리가 해석할 수 없는 관계가 있을 뿐이야,. 세상에 모든 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일어날 일을 반드시 일어난다는 거야.” p. 134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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