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하나로 바뀐 삶의 행로
농담 하나로 바뀐 삶의 행로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05.24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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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단장한 밀란 쿤데라 전집 시리즈

[북데일리] 누구나 실수를 하고 누구나 농담을 하며 산다. 다만, 실수를 했을 때 바로 사과로 이어지면 다행이듯 농담도 농담으로 받아들여주었을 때에만 진짜 농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표지로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사용하며 새롭게 선보이는 밀란 쿤데라 전집의 <농담>(민음사. 2011)을 읽으면서 진정한 농담에 대해 생각한다.

소설의 주인공 루드비크가 대학 시절 좋아하는 여자에게 보낸 엽서에 쓴 지극히 사적인 농담이 그의 인생을 파국으로 이끄는 중요한 사안으로 부각되버린 것도 농담을 농담이 아닌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공산당 독재시절을 떠올리면 사회주의 시대에 당 위원회의 질책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루드비크는 자신이 대학에서 추방당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농담으로 완전히 다른 삶의 길에 접어든 그가 그 시절을 가슴에 새기고 복수와 함께 살아온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누군가는 그를 당을 배신하고 혁명을 반대하는 인물로 기억하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농담으로 인해 좋아하는 여자 친구뿐 아니라 모든 것 잃은 루드비크는 자신의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여주지 않은 세상을 원망하면서도 과연 그 농담이 자신의 진짜 마음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루드비크처럼 모두가 젊었던 시절이니 진심보다는 어떤 명분이 더 필요했다. 개인보다는 당이 우선시 되어야 했고 대중들에게 혁명의 결과을 보여주어야 했고 요구되던 시대였던 것이다.

‘젊음이란 참혹한 것이다. 그것은 어린아이들이 희랍 비극 배우의 장화를 신고 다양한 무대 의상 차림으로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면서 광적으로 신봉하는 대사들을 외워서 읊으며 누비고 다니는 그런 무대다. 역사 또한, 미숙한 이들에게 너무도 자주 놀이터가 되어 주는 이 역사 또한 끔찍한 것이다. 네로라는 풋내기, 나폴레옹이라는 애송이, 흥분하여 날뛰는 수많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흉내 내는 열정이나 간단하게 맡아 버린 역할들은 처참하도록 실제적인 현실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p. 152

소설은 많은 시간이 흐른 뒤 고향을 찾아온 루드비크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를 교차로 들려준다. 고향에서 우연하게 마주한 (그가 학교에서 추방당하고 힘들었던 시절 사랑했던) 여인 루치에, 루드비크를 사랑하는 헬레나, 고향 친구인 야로슬라프, 루치에를 사랑한 또 한 명의 남자 코스트카의 시선을 통해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

루드비크의 고향 방문은 과거 위원회장이었던 제마네크의 아내인 헬레나를 유혹하고 버리기 위한 계획적인 것이다. 그를 진심으로 사랑한 헬레나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얽히고 얽힌 관계 속에서 누군가는 정말하고 누군가는 희망을 갖는다. 과거의 사건에 대해 기억은 저마다 다르고, 서로에 대한 감정들 역시 달랐던 것이다. 누군가가 농담으로 치부한 말이 누군가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고, 누군가의 의미 없는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의미로 가슴에 새겨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 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다. 이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다. 모든 것은 잊히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힐 것이다. ’ p. 493

분노와 절망으로 각인된 인생의 한 부분을 한 마디 농담으로 덮고 치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우리는 그렇게 믿고 싶은지도 모른다. 과거에 저지른 잘못과 실수를 누군가 이해해주고 웃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헛된 믿음일지라도 말이다. 농담 같은 삶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겠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엔 때때로 농담이 필요하지 않을까.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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