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백화점-탐욕의 인간
욕망의 백화점-탐욕의 인간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05.22 0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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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가 담은 '자본쫓는 온갖 군상들'

[북데일리] 아름답게 치장한 한 여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향해 몸부림치고 있는 표지만으로도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시공사. 2012)이 들려줄 이야기가 궁금하다.

소설은 주인공 드니즈가 두 남동생과 함께 큰아버지를 찾아 파리에 도착해서 거대한 백화점을 보고 놀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시골에서 상경한 드니즈에게 백화점은 닿을 수 없는 곳이자 갈망의 대상이다. 백화점의 등장으로 자신이 신세를 져야 할 큰아버지의 가게가 몰락하고 있다는 건 다른 문제였다.

큰아버지 가족을 비롯한 주변 상인들에게 백화점은 증오의 대상이었지만 파리의 여인들에게는 누구나 꿈꾸는 곳이다. 드니즈는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백화점에 판매원으로 취직한다. 드니즈는 동료와 상사에게 무시당하며 고된 생활을 이어가면서 점점 백화점에 적응해 나간다.

소설의 또다른 주인공인 백화점 사장인 무레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주변 여인들의 권력을 이용한다. 그는 언제나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물건을 팔아 이익을 남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백화점을 확장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고객들의 눈을 배려하려고 애쓰는 건가? 두려워 할 것 없네. 그들의 눈을 홀리란 말이야. ……자! 여기 이렇게 빨강! 초록! 노랑! 이렇게 해보라고!” p. 85 - 1권

백화점에 대한 모든 결정권을 지녔고 모든 여인의 사랑을 받는 무레에게 단 하나 갖지 못하는 게 있었다. 바로 드니즈의 사랑이었다. 드니즈에겐 돌봐야 하는 두 동생이 있었고 바람둥이로 소문 난 무레는 그저 탐욕스러운 사장으로 비춰질 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드니즈를 향한 마음을 멈출 수 없다. 그녀 역시 그를 사랑하지만 자신의 환경과 위치 때문에 다가가지 못한다.

소설은 두 남녀의 밀고 당기는 애정 이야기가 주가 아니라 백화점이란 공간에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인간의 이야기다. 더 많은 물건을 팔고자 하는 욕망, 더 많은 것을 소요하고자 하는 욕망, 더 높은 지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 더 많은 것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들이 가득하다.

‘계단은 온통 백색 휘장을 늘어뜨려 장식해놓았다. 피케와 바쟁으로 된 휘장이 번갈아 3층까지 난간을 따라 올라가면서 홀을 빙 둘러쌌다. 백색 천들이 위로 올라가는 모습은 마치 백조가 날갯짓을 하면서 날아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듯 보였다. 시선을 더 위쪽으로 향하면, 둥근 천장으로부터 새의 솜털 같은 새하얀 눈송이들이 떨어지는 게 보였다. 백색 담요와 백색 무릎 담요는 교회의 단기처럼 공중에 매달린 채 펄럭거렸다. 허공에 길게 늘어진 기퓌르 레이스가 흔들리는 모습은, 새하얀 나비들이 떼를 지어 윙윙거리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사방에서 파르르 떨고 있는 레이스들은 어느 여름 하늘의 거미줄처럼 공중에 매달린 채 새하얀 숨결로 허공을 채우고 있었다. 무엇보다 경이로움의 극치를 보여준 것은, 중앙 홀의 실크 판매대 위쪽에 마련된 백색 종교를 위한 계단으로, 유리 천장으로부터 늘어진 백색 커튼으로 이루어진 장막이었다.’ p. 275 - 2권

상상만으로도 흥분되는 이 광경이 바로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다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여자들이 얼마나 될까. 에밀 졸라는 이처럼 백화점의 내부와 그에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세세히 묘사해 물질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찬 19세기 파리의 모습을 소설을 통해 그대로 재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책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의 모델이 되었던 19세기 파리의 실재 백화점과 직원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부록으로 있어 더욱 흥미롭다.

소설 초반에 몇 십 명에 불과했던 직원이 점차 몇 천명에 이르고, 어디 그뿐인가. 매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고객을 위한 편의시설도 생겨난다. 거대한 광고와 백화점 입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모습은 현재의 백화점의 풍경과 다르지 않아 놀랍기까지 하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누군가를 짓밟고, 돈과 권력으로 세상뿐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다는 부질없는 믿음, 갖을 수 없는 것을 갖기 위해 자신을 망치는 모습을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그의 백화점은 흔들리는 믿음으로 인해 신도들이 점차 빠져나간 교회 대신, 비어 있는 그들의 영혼 속으로 파고들었다. 여인들은 공허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 그의 백화점을 찾았다. 그리하여 예전에는 예배당에서 보냈던 불안하고 두려운 시간들을 그곳에서 죽여나갔다. 백화점은 불안정한 열정의 유용한 배출구이자, 신과 남편이 지속적으로 싸워야 하는 곳이며, 아름다움의 신이 존재하는 내세에 대한 믿음과 육체에 대한 숭배가 끊임없이 다시 생겨나는 곳이었다.’ p. 323 - 2권

에밀 졸라의 이 소설은 백화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과 사랑에 대한 말한다. 하나의 거대한 백화점이 어떻게 주변 시장의 상권을 잠식하는지, 자본을 따라 움직이는 온갖 군상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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