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쓴 편지가 죽음 불렀다?
40년 전 쓴 편지가 죽음 불렀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05.19 1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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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억은 진짜일까...허를 찌르는 소설

[북데일리] 사람들은 하나의 사건에 대해 기억하고 싶은 부분만 기억한다. 그러니까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관계된 이들이 모두 같은 기억을 갖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때로는 선명하게 떠오르는 일에도 원하지 않는 부분은 잊으려 애쓴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기억에 지나지 않는다는 일이라는 말이다. 때문에 서로 다른 기억은 사소한 오해를 불러오기도 하고 심지어는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도 한다. 2011 맨부커상 수상작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다산책방.2012)는 이런 기억에 대해, 아니 지난 삶의 어긋난 인연에 대해 말한다.

소설은 60대인 화자 '토니'가 들려주는 40년 전과 현재의 이야기다. 하나의 일에 대한 기억이 과거와 현재에 얼마나 다른지 보여준다. 토니에겐 고등학교 시절 3명의 친구들이 있었다. 그 중 에이드리언은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남달랐다. 그는 철학을 비롯한 다방면에 유능했고 케임브리지 대학에 들어갔고 계속해서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토니의 여자친구 베로니카를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이쯤에서 누구나 짐작할 만한 일이 일어난다. 그러니까 베로니카와 에이드리언은 교제를 시작한 것이다. 이 소설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란 제목과 완벽하게 일치하듯 진행되는데 그 과정이 무척 흥미롭다. 베로니카와 헤어진 토니 그런 이유로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미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에서 돌아온 토니는 에이드리언의 자살 소식을 듣는다. 아무런 문제도 없던 그가 스스로 생을 마감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 이었을까. 심지어 철학적인 그는 자신의 죽음, 그 이후의 과정을 모두 기록해두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에이드리언의 죽음으로 인해 삶을 달라지지 않는다. 슬프고 안타깝지만 그와의 추억을 간직할 뿐이다. 40년이 지나 에이드리언의 일기를 보기 전까지. 그렇다. 예감은 바로 적중하는데 젊은 시절 토니의 치기 어린 행동이 그의 죽음에 일조한 것이다.

토니는 아내와 이혼을 하고 손자를 둔 할아버지가 되고서야 자신이 어떤 편지를 썼는지 기억한다. 바로, 베로니카와 그가 사귄다는 사실에 대해 그에게 쓴 편지였다. 어른답지 못한 악담과 복수가 가득 담긴 편지는 베로니카와 에이드리언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결국 에이드리언은 죽었고 베로니카의 남은 삶은 엉망이 된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 베로니카에게 용서를 구하려 하지만 과거에도 그랬듯 현재도 마찬가지다. 베로니카에 대해서도 과거 가장 절친했던 친구에 대해서도 토니는 여전히 멋대로 짐작하고 결론을 내린다. 진실을 확인하지 않은 채 말이다. 그저 자신이 편한 대로 기억하고 추억하려 한다. 어디 소설 속 화자만 그럴까. 우리는 어떨까. 과거라는 시간에 대해 완벽하게 기억하는 이가 있을까. 그저 좋았던 시절만 아름다웠던 시간만 간직하며 살고 싶은 건 아닐까.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다. 아니, 정말 놀랍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예상한 대로 흘러가는 구조를 지녔지만 허를 찌르는 탁월함과 편안하게 다가오는 문장에 누구나 빠져든다. 거기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잘 짜여진 이야기로 누구나 한 번쯤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꺼내고 싶었던 비밀이고, 누군가에게는 울음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부끄러움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우리는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p. 165

소설은 우리 삶이 엇갈린 기억들로 맞춰지는 하나의 거대한 퍼즐이라 말하는 듯하다. 억지로 맞춰 놓은 잘못된 기억이라는 조각이 진짜 모습을 찾는 순간, 우리는 절망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힘겹게 맞춰진 후에야 제대로 완성된 그림이 되는 것이다. 그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지난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니 지금 내가 맞췄다고 믿는 기억의 퍼즐을 다시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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