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나는 누구였을까?
전생에 나는 누구였을까?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05.16 0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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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다룬 소설 '유랑자'....무의식 속의 '생'

[북데일리] 우리는 종종 삶은 여행이라 말한다.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일 말이다. 삶이 닿은 여행지가 언제나 멋지고 좋은 곳은 아니지만 때로 낯선 곳에서 낯익은 누군가와 마주하기도 하는데 우리는 그 만남을 인연이라 하기도 한다. 데자뷰처럼 가물거리는 기억 속의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 존재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때문에 환생을 다룬 『유랑자』(문학동네. 2012)를 읽으면서 나의 전생이었을 누군가를 한 눈에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지는 않았을까 조바심이 나는 건 당연할 터.

소설은 화자인 혼혈인 케이가 어머니의 장례식을 위해 예루살렘에서 서울로 향하며 시작한다. 과거 자신을 버리고 무녀가 된 어머니를 용서할 수 없었지만 바그다드 전쟁터의 한 병원에서 만난 이브라힘가 들려주는 전생을 통해 그녀의 생을 이해하게 된다. 물론 그는 이브람힘을 만난 기억이 없다. 그러나 이브라힘은 케이에게 기록관인 자신을 죽인 십자군 병사였다고 말한다. 거기다 그 전의 생에서 예수를 사랑한 여자였다고 한다. 기록으로 역사로만 배웠던 사실들이 아닌 경험에 의한 전달로 생생하게 예수와 제자의 유랑을, 죽음이 낭자한 잔인한 십자군 전쟁을 묘사하는 이브라힘은 그 시대를 다 겪어온 듯 고요하고 차분하다.

어머니의 혼령을 위한 넋굿을 보면서 케이는 죽음이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무녀의 몸을 빌려 고통 속에서 생을 살아온 어머니의 진심을 듣는 시간, 케이는 알 수 없는 전율을 느낀다. 아주 오래 전부터 연결된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연이 아닌 그 이상이라는 걸 느낀 것이다. 소설은 전생과 현실을 드나들며 그들의 삶을 들려준다. 그러니까 이런 방식을 통해 우리는 이브라힘의 전생을 통해 무의식 속의 생과 마주하는 것이다.

소설 『유랑자』는 우리 모두의 생에 관한 이야기는 아닐까. 자신의 생을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운명을 살고 있는 우리네 모습 말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누군가의 전생이 아니며 누군가의 미래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그러니 우리는 정말 끝없는 생을 살고 있는 존재들은 아닐까. 소설 속 이브라힘의 말처럼 말이다.

‘전생의 나는 과거의 존재가 아니었다. 지금의 나와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예수 시대의 살았던 전생의 나와, 그로부터 천년이 더 지난 후에 살고 있는 내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은 모순이었다. 아니, 불가능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신비로운 시간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었다. 그것은 일상의 시간과는 전혀 다른,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시간의 개념을 해체하고 무화해버리는 새로운 시간이었다.’ p. 99

우리는 한 치 앞의 일도 모르면 산다. 먼 훗날 기억하지 못할 오늘을 산다. 주인공 케이처럼 혼혈아로, 두 어머니의 아들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죽음으로 둘러싸인 전쟁터를 마주하며 복잡하게 얽힌 삶을 살기도 한다. 그 안에서 이별을 하고 사랑을 하고 죽음을 경험한다. 어딘가를 향해 끝없는 유랑을 한다. 나로 존재하기 위해 나로 살아가기 위해 끝없는 유랑자의 길을 가는 이들에게 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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