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에서 상속까지' 진화하는 신탁상품... 세제는 제자리걸음
"상속세·증여세 등 관련법 개정해야"
[화이트페이퍼=이희수 인턴기자] 고령화 시대에 발맞춰 은행들이 상속·기부·증여가 자유로운 신탁상품들을 내놓고 있다. 고연령층이 많아지는 탓에 앞으로는 증여·상속세를 아끼려는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그동안의 금융상품은 가입자 본인의 재테크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자식과 손자녀 세대에 걸쳐 수익을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 개발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최근 정부의 ‘부자 증세’ 기류도 한몫했다.
은행들이 앞다퉈 기부나 증여, 상속형 신탁 상품을 내놓고 있지만 현 세제 하에서는 실질적인 혜택이 미미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회 공헌 및 기부문화 정착을 위해서도 세재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신탁상품 러쉬... '유언기부신탁', ‘명문가문증여신탁’, 'KB금지옥엽신탁‘ 등
증여, 상속형 신탁에 이어 사회기부형 신탁상품까지 등장했다.
29일 신한은행은 유언기부신탁 상품 4종을 출시했다. 유언기부신탁은 위탁자가 금전의 재산을 은행에 신탁해 일반 통장으로 사용하다가, 사망 시 신탁 계약서상에 명시해 놓은 공익단체, 학교, 종교단체 등에 기부하는 상품이다.
앞서 신한은행은 지난 2016년 말 ‘내리사랑신탁’을 출시한 바 있다. 이 상품은 유언대용신탁으로, 재산 운영 방안이나 상속의 형태를 위탁자가 지정할 수 있는 맞춤형 상품이다.
유언대용신탁은 배우자와 직계 자녀에게만 상속할 수 있는 유언장과 달리 손자에까지 재산을 넘겨줄 수 있는 것이 장점으로, 우리은행의 ‘명문가문 증여신탁’이 대표적이다.
‘명문가문 증여신탁’은 최소 가입 금액이 3억원으로, 은행에 한꺼번에 돈을 맡기면 6개월에 한 번씩 원금과 이자를 자녀 앞으로 지급하는 형태다. 상품 가입 후 정기적으로 분할 증여 시 상속증여세를 10% 할인받을 수 있는 절세형 증여신탁이다.
KEB하나은행의 경우 지난 2010년 금융권 최초로 유언대용신탁 상품을 출시했을 정도로 신탁에 일찍 눈을 떴다. 지난 19일에는 한 부모 가정의 자녀 양육비를 지원하는 '양육비 지원신탁'을 내놓기도 했다. 이 상품은 신탁에서 양육비를 관리해 미성년 자녀에게 직접 지급되도록 설계됐다.
국민은행도 지난해 11월 조부모가 손주에게 상속·증여를 할 수 있는 'KB금지옥엽‘ 신탁을 출시했다. 이 상품은 조부모뿐만 아니라 부모가 자녀에게 또는 삼촌이 조카를 위해서도 가입할 수 있다.
■ 신탁 시장 활성화 위해 세제 개편 필수... 일본, 최대 1억5천만원 증여세 면세
금융위원회는 지난 28일 치매·유언신탁 등 특화신탁사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만큼 유언 신탁상품에 대한 고객 수요가 많다는 것이다. 다만, 상품 가입자가 실질적인 혜택을 보려면 정부의 세제 개편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상속 및 증여세 비중은 세계 2위로, OECD 평균의 4배 수준에 이른다. 상속세 최고세율을 50%로 봤을 때 현행 소득세 최고세율은 40%로, 상속세가 10%나 높다.
반면 가까운 일본의 경우 증여세 면세제도를 과감하게 시행한 바 있다. 조부모가 신탁을 활용하여 손자녀의 교육자금 또는 결혼양육자금을 증여할 경우 각 1억5천만원과 1억원 한도로 증여세를 면세해줬다.
윗세대에서 아랫세대로 추가 비용없이 자금이 흘러 들어가도록 해 내수부양에 도움을 준다는 취지에서다.
우리은행 신탁부의 김흥수 부장은 “국내에서 신탁에 대한 수요가 많고 은행 입장에서도 상품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상속세·증여세 등 관련 법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상품은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은행측은 '장애인 특별부양 신탁제도'의 경우, 신탁 원금이나 신탁 부동산을 중간에 인출·매각할 경우 면제됐던 증여세를 납부해야 하기 때문에 장애인 가족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일본 등 선진국의 세제 개편 사례를 모방해 다양한 신탁 상품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는 한편, 금융 시장을 다각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