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초 책읽기] 우리는 순응에 익숙한 '을'이 되는 법부터 배웠다
<대리사회>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학생 딱지를 떼고 사회인이 되는 순간 우리는 필연적으로 ‘을’을 경험한다.
그런데 사실은 예상보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는 ‘을’을 학습해왔다. 가정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우리는 순응하는 법부터 배우고 있다.
다음은 대리기사가 어떻게 현실에 ‘순응하는 몸’을 만들며 을이 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타인의 운전석에서 내리며, 나의 신체를 되찾는다. 더 이상 상대방의 눈치를 보며 기계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조금씩 주체의 자리에서 이탈하는 데 익숙해져 갔다. 상대방이 말하는 대로 수용하고 긍정하는 간편한 대화의 방식, 말하자면 ‘순응’이 어느새 자연스럽게 몸에 각인된 것이다. 누군가 나를 주체로서 대우한다고 해도 익숙해진 몸을 되돌리기 쉽지 않다. 그러면 어디에서든 주체로서 발화할 수 없게 된다. ‘순응하는 몸’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타인의 운전석과 다름없는 ‘을의 공간’은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그 어디에서, 주체의 욕망은 쉽게도 타인을 잡아먹는다. 예컨대 의사 결정권자는 언제나 자유롭게 회의 안건을 내고 소통하지만 그 누구도 거기에 다른 의견을 내기는 쉽지 않다. 이미 수용 가능한 범위가 제한되어 있음을 모두가 안다. 거기에서 벗어나거나 반론을 내기라도 하면 곧 눈총이 쏟아진다. 소통은 주체가 된 이들의 논리를 확인하고 강요하는 수단이 된 지 오래다. 부하 직원은 직장 상사에게 아이디어를 내지 않고, 학생은 교사의 의도에서 벗어난 답을 제출하지 않는다. 아이 역시 부모 앞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털어놓지 않는다. 자신이 주체가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부터 시작해 교사,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을의 공간’에서 순응하는 방법을 주로 배워왔다.’ -<대리사회>(와이즈베리.2016)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