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키워야 구조조정이 선다] (상) IB플레이어 없이 PEF마저 역량 부족 넘어서야
현재 시장 기능으론 구조조정 불가능..토종PEF는 문제해결 역량·리스크 감당 미흡해
<편집자주> 정부가 8일 발표한 구조조정 계획이 ‘밀실·무원칙·관치’라는 구태를 답슴한 것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화이트페이퍼는 자본시장을 통한 기업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못하는 이유를 살피고,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전문가 의견을 모아보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화이트페이퍼=최진영 기자] 위기에 빠진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방향이 결국 다시 관치에 의존하는 양상에 빠졌다. 자본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수시로 선제적 구조조정이 이뤄졌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정부가 끌어 준 적도 없고 업계 스스로 노력하지 않다 보니 최근 국내 기업구조조정 시장은 외국계 사모펀드(PEF)의 맛집 순례지로 전락했다는 비판까지 불거졌다.
■ 브로커리지·자산관리만 있고 IB기능 태부족 금투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자본시장이 너무 협소해 기업구조조정 규모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탄해왔다. 국내 플레이어들은 제한된 업무만 수행해도 살아갈 수 있는 온실 속 화초들이었다는 날 선 지적의 소리까지 들린다.
그동안 제기됐던 주장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정부 규제 탓에 사모시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는 지적이다.
신인석 자본시장연구원장이 지난해 9월 연구원 18주년 기념식에서 “사모시장이 급성장한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법에서 인정하는 사모 자본시장의 영역이 협소한데다 금융투자회사의 장외시장업무 원칙적 금지 등 시장참가자에 대한 규제로 사모시장의 자율진화가 곤란하다”고 지적한 점은 지금도 유효하다.
현행 법 테두리 안에서는 제 아무리 사모펀드라 해도 ▲대기업 구조조정 ▲중소기업 성장 ▲벤처기업 소수 지분 투자 ▲해외 기업 인수 등 리스크가 큰 사업에 진출할 여력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자본시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기업에 대한 평가가 수시로 이뤄지는 장점이 살아날 것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장 이해관계자들이 모여서 형성한 가격이 선제적 구조조정을 이끌어내고 효율을 높인다. 수많은 평가를 거쳐 형성된 ‘가격’은 자원재분배의 핵심이 된다. 우수한 기업이 투자자의 선택을 받는 반면 불량기업을 과감히 퇴출시키는 기준도 결국 가격을 제대로 셈해 주면 된다는 것이다.
빈기범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부교수는 “채권단간에 이해 충돌도 결국 자신과 타인이 지닌 명시적·암묵적 지분의 가격문제”라고 설명했다.
■ “기업가치 높여 이해관계자 모두 윈-윈 하는게 자본시장 역할”
또한 “자본시장의 기존보다 기업구조조정은 기업 가치를 상승시켜 모든 이해관계자 누구하나 손해 보지 않는 파레토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부주도 기업구조조정에 비해 효율적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기업을 평가할 개인·법인·PEF·구조조정전문회사 등이 많고 거래가 왕성하게 이뤄져야 가능하다.
국내에선 이같은 역할을 해 줄 플레이어가 너무 부족한 실정이다. 당연히 외국계 PEF들이 일감을 독식해도 강건너 불구경 하는 처지가 됐다.
일례로 뉴브리지 캐피탈은 2003년 11월 옛 하나로통신 지분 40%(약6000억원)를 샀다. 2008년에 SK텔레콤 측에 약1조원 가량을 받고 판매했으며 이는 현재 SK브로드밴드이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PEF는 경영참여도 가능하기 때문에 주주이익을 사수하기 위한 경영권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2004년에 소버린 자산운용의 경우 SK그룹에 경영권을 요구했다. 기존 경영진 편에 선 국민연금이 아니었다면 경영권 방어는 물 건너갔을 것이다.
빈기범 교수는 “(자본시장 주도 기업구조조정은)사후적 구조조정에 따른 고통과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을 막고, 경영진을 견제해 기업의 부실을 미연의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 가치를 제대로 살필 줄 아는 전문성 갗춘 플레이어, 그리고 구조조정 기회를 꾸준히 살피다가 과감히 대규모 자금을 움직여 주도권을 확보할 깜냥을 갖춘 플레이어가 나오려면 법규 손질부터 금융투자업과 PEF 육성까지 과제가 산적해 있다. 임무는 막중한데 가야할 길은 머나 먼 ‘임중도원(任重道遠)’ 힘겨운 형국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