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지식] 민주주의 발원지 아테네보다 전제국자 스파르타가 더 민주적?
<전투의 경제학> 권오상 지음 | 플래닛미디어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그리스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발원지다. 스파르타는 전제군주 체제하의 병영국가로 아테네의 민주주의체제와 비교·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스파르타가 아테네와 완벽히 대조적일 정도로 비민주적 국가는 아니었다. 오히려 대내적으로는 아테네보다 민주적이었다.
스파르타에 왕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왕은 1명이 아니라 2명이었다. 왕이 2명이니 권력다툼이 빈번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지만, 아니었다. 2명의 왕은 각각의 권한에 의해 종교적·사법적, 그리고 군사적 의무를 수행했다.
또한, 2명의 왕과 별도로 5명의 ‘에포르’라는 집정관이 있었다. 에포르는 매년 스파르타 전체 시민권자들이 투표로 선출되었고 스파르타 전체를 위해 일하기로 맹세하며 재선을 불가했다. 아테네의 집정관인 아르콘과 명칭만 다를 뿐이다.
이외에도 60세를 넘긴 28명의 노인이 2명의 왕과 함께 ‘게로우시아’라는 일종의 원로원을 형성해 재판의 권한을 행사했고, 중요한 국가적 정책은 최종적으로 전체 시민권자들의 투표에 의해 결정됐다. (62쪽) 일부 수정
<전투의 경제학>(플래닛미디어.2015)이 전하는 내용이다. 책에 따르면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체제는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아테네는 경제적인 여력이 있는 남자들만이 시민의 권리를 누릴 수 있었고 여자들은 철저하게 권리를 부인당했다. 또한, 노예를 부렸으며 주변 도시국가에 대해서 억압적인 모습을 보인 게 아테네의 민주주의 체제였다. 게다가 여자들은 교육받을 권리가 없어 대부분 문맹이었고 법적으로도 재산 보유 및 처분에 적지 않은 제약이 따랐다.
이와 다르게 스파르타의 여자들은 남자들과 거의 같은 교육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글을 읽고 쓸 줄 알았고, 재산 보유에 특별한 제약이 없었다. 심지어 아테네에서는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이 먹는 음식조차 차별이 있었지만, 스파르타에는 그런 어이없는 차별은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스파르타가 대내적으로 더 민주적이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