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와인드] 세월 속 유유히 흐르는 관계의 풍경 '산하고인'
[화이트페이퍼=김동민 기자] 우리는 언제나 타인의 삶 속에서 일부로만 존재한다. 연인, 친구, 가족 등 그 어떤 상대와도 삶의 전부를 공유할 수는 없다. 한때는 서로에게 전부일 것만 같았던 이들은 각자 또다른 누군가의 무언가가 되어 살아간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던 상대가 상처를 남긴 채 떠나기도 하고, 과거 자신이 외면했던 이에게 되레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 사이 누군가는 늙어 죽고 다른 누군가는 새로 태어나 자란다. 새삼스럽지만 시간의 흐름이란 결국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인 것이다.
영화 ‘산하고인’의 시작은 1999년 중국 펀양을 배경으로 한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부터 절친했던 리앙즈와 진솅, 타오의 관계는 두 사람이 각각 타오에게 연정을 품으면서 조금씩 틀어진다. 결국 타오는 재력 넘치는 진솅의 구애를 받아들여 그와 결혼하고 리앙즈는 펀양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향한다.
세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존재감은 작품 속에서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삼각관계의 갈등을 구구절절한 대사로 속 시원하게 설명하지도 않고 애초에 상대에 대한 마음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도 굳이 캐려 하지 않는다. 그저 디스코 클럽에서 음악에 몸을 맡긴 채 춤을 추거나 다이너마이트로 언 강물을 폭파하는 등의 행위들을 굳이 시간을 들여 바라볼 뿐이다. 말하자면 영화가 집중하는 건 그들 개개인의 드라마가 아니라 침묵 속에 보여지는 관계의 ‘풍경’ 자체인 것이다.
1999년과 2014년, 2025년의 세 챕터로 나뉜 영화의 구성 또한 이러한 효과를 더한다. 1999년의 삼각관계는 2014년에 이르러서는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15년이 흐른 뒤 세 사람의 열정은 그저 추억 속에만 남아있을 뿐, 카메라의 시선은 이제 타오와 그의 아들 달러에게로 향한다. 여기에 10년이 지나 2025년이 되고 나서는 달러와 아빠 진솅, 새로운 인물 미아의 또다른 이야기가 다뤄진다. 영화는 그렇게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의 세계를 마치 산처럼 가만히 서서 바라본다.
산하고인의 세 챕터는 각각 다른 영상 소스를 사용해 제작했고 화면비 또한 1.33:1, 1.85:1, 2.39:1로 다르다. 덕분에 각 챕터 사이의 시간적 공백은 더욱 강렬하고 20대에서 50대를 아우르는 배우들의 연기에서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에 영화 곳곳에 흘러나오는 펫샵보이즈의 ‘고 웨스트'(Go west), 엽천문의 ’진중‘(珍重) 등 추억의 음악들도 25년의 시간을 관통하며 가슴 아린 감동을 자아낸다. 3월 10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