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와인드] ‘남과 여’, 낯선 공간 그리고 익숙함 이어진 두려움
[화이트페이퍼=김재범 기자] 멜로가 사라진 충무로의 현실 속에서 오랜만에 등장한 감정의 흔들림을 느껴볼 수 있는 영화다. ‘멋진 하루’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를 만든 이윤기 감독의 내밀한 세공력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마지막 택시 안 전도연의 오열이 가슴에 남았다. 공유의 흔들리는 눈빛이 쓰라렸다. 두 사람의 그 마지막이 멜로다.
낯선 공간이다. 한 번 쯤은 들어봤다. 하지만 잘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는 공간에서 벌어질 기대감은 두 가지다. 그 기대가 설렘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설렘의 끝은 두려움이 될 수도 있다. 설렘이란 감정이 익숙해질 때쯤 두려움이 올 것이다. 익숙함이 두렵기 때문에 낯선 공간은 결국 편안함으로 감정의 파장을 다스린다. 한 남자와 한 여자에게 낯선 공간은 시작이었고 끝이었다. 그 공간이 주는 편안함이 결국 두려움을 끌고 온 익숙함이 됐다.
영화 ‘남과 여’는 그렇게 흔들렸다. 너무도 간단하고 명료하며 확실한 두 어절의 ‘남’과 ‘여’가 바라보고 있다. 아니 나란히 서 있었다. 그것도 아니면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남과 여’의 한 남자와 한 여자는 ‘과’란 또 다른 한 음절 조사를 사이에 두고 서 있다. 두 사람은 과연 마주봤던 것일까. 아니면 나란히 서서 한 곳을 봤을까. 그것도 아니면 서로를 등진 채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았던 것일까. 앞선 두 가지 모양새가 주고받는 흐름의 형태라면 마지막 하나는 감정 폭력이다.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라는 강제성만 전한다. 그건 폭력이나 다름없다. 두 사람이 나눈 흔들림은 감정이었을까. 아니면 서로에 대한 보이지 않는 폭력이었을까. 그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연이 자리한다.
◆ 남자와 여자...흔들리는 가슴
감정의 흔들림은 사랑이다. 사랑은 흔들린다. 흔들리기에 바라보는 곳에 남자가 있었고 여자가 있었다. 남자와 여자는 공간이 주는 힘에 이끌렸다. 낯선 공간이 주는 설렘에 굴복했다. 감정의 결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사실 그 균열의 원인은 아픔이다. 남자 기홍(공유)은 아프다. 딸이 아프다. 아내가 아프다. 딸은 마음의 상처로 입을 닫았다. 아내는 남편의 흔들림을 의심해 마음을 다쳤다. 그 흔들림이 주는 힘이 남자를 결국 아프게 했다. 여자도 아프다. 아들이 아프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소통의 문이 닫혔다. 그 문은 결국 여자의 가슴도 닫아 버렸다. 닫힌 가슴은 가장 가까워야 할 남편과의 대화를 끊어 버렸다. 여자는 외톨이다. 혼자다.
남자와 여자는 이미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뿌리를 내릴 수 없었다. 그 땅(가정)은 이미 마르고 갈라진 상태다. 그 틈을 매울 수 있는 가능성은 이미 사라진 상태다. 그런 상황 속에서 두 사람은 만났다. 아픔의 공감이 남자와 여자의 닫힌 마음을 열어 버렸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있어야 할 그것을 상대방에게서 찾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연일 뿐이다. 인연이 되기 위해선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감정의 흔들림이다. 사랑이다.
◆ '흔들리는 여자' 그리고 '설레이는 남자'
핀란드란 낯선 공간에서 만난 남자 기홍과 여자 상민은 그렇게 우연의 만남 속에 인연이란 쉼표를 남기고 헤어진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두 사람은 서울이란 낯익은 공간에 다시 만난다. ‘낯섬’과 ‘익숙함’의 이율배반적 공간은 다시 한 번 두 사람을 흔든다.
남자는 다가선다. 자신의 아픔이 이끄는 힘을 믿고 싶었다. 감정의 흔들림을 따랐다. 여자는 두려웠다. 닫힌 문이 열리는 게 두려웠다. 그 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상처 받기 싫은 것이다. 하지만 그 진동은 예상 밖으로 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닫힌 문의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픔도 잊게 된다. 잃어버렸던 자신을 찾고 싶은 것이다. 남자는 “한 번 가로질러 가보자”며 낯선 공간 핀란드에서 여자에게 말했다. 여자는 낯익은 공간 서울에서 그 말의 흐름을 알게 된 것이다. 여자는 두렵다. 여자는 “우리 정말 큰일이다”며 그 힘이 열어 버린 문 뒤 편의 새로운 가능성을 말했다. 남자와 여자는 그렇게 우연이 만들어 낸 흔들림의 인연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흔들림의 실체가 감정이란 것을 느낀 뒤 두려움이란 존재와 마주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바라본 것일까. 아니면 같은 곳을 바라본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서로를 등진 채 다른 곳을 바라보며 상대에게 강요만 한 것일까. 사랑일까.
감정의 흔들림은 사랑이란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속에는 폭력도 자리하고 있다. 두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가정이 있다. 이미 머물러 있는 상태다. 하지만 움직이려 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말하는 불륜이다. 더욱이 남자와 여자 모두 아픔이 있다. 또 다른 자신(자식)이 아프다. 눈에 밟힌다. 그리고 또 다른 자신(아내와 남편)이 가슴을 당긴다. 망설임이다.
흔들림의 진동을 따라 몸을 움직이면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서 여자는 망설였다. 흔들림의 울림을 따라 남자는 몸을 움직였다. 그래서 남자는 설레였다. 우연을 인연이라 믿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여자에겐 폭력이었다. 여자의 망설임이 결국 닫힌 마음의 문을 열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 끝에서 여자는 공허함을 만났을 뿐이다.
남자는 후회를 만났다. 그렇게 ‘남’과 ‘여’는 단 하나의 음절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고 나란히 섰다가 서로를 등진 채 다른 곳을 보게 된다. 그건 상대가 아닌 자신에 대한 폭력이다. 감정에 대한 솔직함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랑은 아프고 폭력이다.
‘남과 여’의 115분 러닝타임은 그렇게 두 사람의 시선을 투영시키며 감정이란 보이지 않는 실체가 바라보는 곳을 덤덤히 지켜본다. 바라보는 두 사람과 지켜보는 관객의 사이에 존재하는 그 간단한 조사 한 단어 ‘과’의 의미가 과연 영화 속 ‘남자’ 기홍과 ‘여자’ 상민에게도 그러했을까.
바라봤던 것인지 지켜봤던 것인지는 오직 두 사람만 알 것이다. 개봉은 오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