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예수는 맨날 '죽상'인가...'웃는 예수' 기발한 발상

<운을 부르는 말과 행동 50> 이상헌 지음 | 나무발전소

2016-01-07     정미경 기자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홍준표 화백은 교회에 갈 때마다 죄송스러웠다. 살인범도 형기를 채우면 석방되는데 예수님은 무슨 죄를 지었길래 2,000여 년간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을 받으시나 하고 생각을 하다 보니 그 고통이 온몸에 전해왔다. ‘그렇다면 나라도 이분을 해방시켜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기도를 했다. 마침내 1,000일 만에 웃는 예수가 현신했다. 그는 자기가 눈으로 본 예수를 캔버스에 옮겨 ‘웃는 예수’라는 초상화를 그렸다.

“십자가는 죄수를 죽이는 형틀이지 은혜와 축복의 상징은 아닙니다. 더구나 이런 고통 속에 힘들어하는 분에게 나는 죄인입니다. ‘은혜 주세요, 복 주세요, 소원성취하게 해주세요.’ 하는 것은 파렴치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 아버지’ 하지만 자기 아버지가 형틀에 매달려 있다면 그대로 보고 있겠습니까?” (p.22)

저자에 따르면 잘 웃는 사람이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찡그린 미녀보다 활짝 웃는 할머니가 훨씬 아름답다.

“잘 웃는 사람은 호감을 주는 사람이다. 상대편을 편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매년 기독교인 숫자가 급감하고 있는데 문 닫는 교회가 6,000~7,000개가 된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상처를 입은 예수 상도 한몫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p.23)

‘웃는 예수’에 대한 소문은 SNS룰 통해 세계로 퍼져나갔다. 외국에서도 구매 요청이 들어온다. 상표권 등록까지 마친 홍 화백은 ‘예수 영광시대의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올해 상복도 터져서 대한민국통일문화제 미술대상과 대한민국성공대상도 수상했다.

‘원하는 것을 끌어당기는 운 경영법‘이라는 부제가 붙은 <운을 부르는 말과 행동 50>(나무발전소. 2015)에 등장하는 글이다. 저자에 따르면 1%의 말과 행동의 차이가 불운과 행운을 가른다.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부드러운 말씨를 쓰는 당신이 바로 행운의 주인공이다. 운을 부르는 행동과 말로 나도 당신도 새해에는 원하는 일들이 술술 풀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