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명문장] 치매 남편의 절절 고백 “당신 가슴속에 집 하나를 지었소."
<당신> 박범신 글 / 문학동네
2015-12-10 박세리 기자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당신 가슴속을 좀 들여다보구려. 평생에 걸쳐, 거기, 당신 가슴속에 내가 집 하나를 지었소. 고대광실로다가. 죽은 다음에도 들어가 살 집. 당신 가슴속인데 당신 허락을 받지 않고 몰래 지어서 미안해요.
미웠던 적은 있었지만, 당신과 헤어지고 싶었던 순간은 한 번도 없었소. 그런 점에서 나는 성공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참, 아무것도 후회하진 말아요. 후회하면 당신 가슴속에 지은 내 집이 무거워질 거요. 아이고, 그 집이 무거워지면 당신, 무슨 수로 걷고 춤출 수 있겠소. 당신은 춤출 때가 가장 아름다운데.” -266쪽~267쪽 중에서
치매에 걸린 남편이 아내에게 남긴 사랑 고백이 절절하다. 노부부의 사랑을 다룬 박범신의 소설 <당신>(문학동네.2015)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 대목이 특별한 이유는 둘 사이의 삶이 평탄치 않아서다.
남편은 평생 아내와 딸을 위해 자신의 본심을 감추면서 헌신하고 살아왔다.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자신의 딸로 애틋하게 키우면서 평생 마음을 잡지 못한 아내에게 늘 잔잔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 그가 죽음의 문턱에서 아내에게 가슴속을 들여다보면 자신이 지은 집이 있을 거라 말한다. 그것도 고대광실로 말이다.
든든했던 남편의 부재를 느낄 때 그녀는 어떨까. 어쩌면 평생을 두고 후회로 살아갈지 모른다. 이를 예견이라도 한 듯 후회조차 하지 말라는 남편의 말은, 평탄치 않았던 삶이었음에도 그들이 부부였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