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지식] 중세엔 길가다 요강단지에 머리 맞는 봉변

<중세의 길거리의 문화사> 양태자 글 / 이랑

2015-11-17     박세리 기자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공공화장실. 지금이야 곳곳에서 찾을 수 있지만, 불과 30~40년 전까지만 해도 그리 많지 않았다. 더구나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던 시절이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위생관념이 자리 잡기 전 중세시대 이야기에 재미난 대목이 있다.

요강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문화인 줄 알았는데 유럽서도 밤에 요강을 사용한 기록이 있다. 식구들의 용변으로 가득 찬 요강을 아침나절에 창문을 통해 길 밖으로 버리곤 했다. 문제는 요강에 가득 찬 오줌을 창밖으로 쏟다가 요강까지 떨어뜨리는 경우가 종종 일어났다는 것이다. 재수 없는 행인들은 요강에 맞아 다치는 일이 빈번했다. 특히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났던 시기가 13세기였다.

작센의 제후 프리드리히 3세(1463~1525) 시절의 기록을 보면 당시 거리가 얼마나 지저분했는지 알 수 있다. 그가 1483년 회의 참석차 뢰팅겐을 방문했을 때, 말을 타고 오물로 가득 찬 거리를 지나다가 타고 있던 말이 오물에 빠져 곤욕을 치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32쪽 중에서, 일부 수정

상상만으로 코를 부여잡고 싶은 심정이다. 게다가 요강에 머리를 맞다니 길 가다 당한 봉변이지만 헛웃음이 날 정도다. <중세의 길거리의 문화사>(이랑.2015)에 따르면 당시는 공중변소는 상상할 수 없었고, 길거리에서 대소변을 누어도 크게 상관하지 않던 시대였다. 이와 관련한 직업도 생겼는데 바로 이동 변소다.

지금의 이동 변소와 차이점은 사람이 직접 대소변 통을 들고 다녔다는 점. 마스크를 낀 채 뚜껑이 달린 통 두 개를 어깨에 메고 그 위에 망토를 걸쳤다. 뚜껑 달린 통이 지금의 변기에 해당하고 망토의 용도는 가리개의 역할을 했다고. 저자는 30~40년 전 우리나라에서 “변소 칩니다”라며 동네를 누비던 이들과 놀랍도록 닮았다고 전한다.

책은 이밖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중세시대 뒷골목의 문화사를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