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지식] 폭정의 연산군 시대...'패(牌) 공화국'

<역사저널 그날> KBS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글 / 민음사

2015-11-16     박세리 기자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연산군은 폭정으로 유명하다. 갑자사화 때 239명이 처형됐을 정도로 그 잔혹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형벌 또한 잔인할 정도였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부관참시(剖棺斬屍)도 연산군 때 생긴 형벌이다.

<역사저널 그날>(민음사.2015)에 따르면 갑자사화 이후 폭정은 제도적 탄압으로 이어졌다. 특히 온갖 패(牌)를 만들었는데 측근 환관들과 궁녀들에게 걸치고 다니라 명한 ‘신언패’는 독재 시대 언론 통제와 다름없다.

‘입은 화의 문이고,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몸이 편안하고 어디서나 굳건할 것이다.’

한마디로 세 치 혀 함부로 놀리지 말라는 말. 이 패를 몸에 걸치고 다녔을 신하들의 수치심이 얼마나 극심했을까.

패의 종류는 이뿐만 아니다. 승명패(承命牌)는 왕명을 수행하는 중임을 뜻하는 패로 내관들이 이것을 들고 있으면 높은 고관이라도 말에서 내려 엎드려야 했다. 허한패(許閑牌)는 한가함을 허락하는 패라는 뜻으로 왕이 쉬라고 할 때만 쉬어야 한다는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 패를 받아야만 쉬고 퇴근할 수 있었다고.

이어 ‘충성 사모’라는 생경한 내용을 소개했다. 신하들이 쓰고 다니는 감투에 앞뒤로 한 글자씩 충, 성이라고 적도록 했다는 것이다. 일종의 강요된 충성이다. 언제까지 폭정이 이어졌을까. 책은 역사가 증명하듯 ‘이런 정치가 계속되면 우리 모두 죽는다’는 공멸 의식 아래 연산군을 몰아내는 반정이 일어났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