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포스트미니멀 풍경을 보여주는 안정숙 작가
색실선 통해 보여주는 수행성 촉각성 유기적 생명력 2월 8일까지 세종대 세종뮤지엄갤러리 ‘실 드로잉’전
[화이트페이퍼=임채연 기자] “나는 매일 아침 빈 화면 앞에 서서 '최소한의 것'으로 돌아가기를 꿈꾼다. 나의 손끝에서 시작된 실 선은 미니멀하다. 하지만 차가운 강철이나 완벽한 직선에 도달하지 못한다. 대신 그것은 나의 호흡을 닮아 미세하게 흔들리고, 나의 맥박을 닮아 불규칙하게 요동친다. 나는 이 부정확한 반복을 사랑한다. ”
안정숙 작가의 ‘실 드로잉’전이 2월8일까지 세종대 세종뮤지엄갤러리에서 열린다. 작가의 작업은 캔버스에 면천을 씌우고 색을 입히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 위에 선를 굿듯 색실을 붙인다. 그리고 그위에 물감은 점을 찍듯 뿌린다. 선과 점의 어울림이다. 많은 실 선들이 점을 불러오는 지루하고도 집요한 대화의 기록이다. 그의 작업이 주목을 받는 것은 1960년대 미니멀리즘이 추구했던 엄격한 기하학적 질서와 차가운 물질성을 넘어, 수행성, 촉각성, 그리고 유기적 생명력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은유의 포스트미니멀이라 하겠다.
# 수행으로서의 그리기
그에게 실 선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원초적인 몸짓이다. 붉거나 푸르거나 혹은 보라색 바탕의 침묵 위에 내려앉는 색실 선은 그의 시간이 퇴적된 층(Layer)이다. 실을 붙일 때마다 그는 잡념을 그 색실 선에 의탁하고, 다음 색실을 붙일 때 비로소 앞선 고민을 잊는다. 화면은 그에게 거대한 기억의 직조실과 같다.
#통제와 방임 사이의 유희
작가는 모든 색실 선들을 완벽하게 통제하려 하지 않는다. 포스트미니멀적 사유는 바로 이 '내려놓음'에서 시작된다. 어떤 색실 선은 중력에 의해 아래로 흐르고, 어떤 선은 옆의 색실 선과 부딪혀 의도치 않은 색의 간섭을 만들어낸다. 그는 질서를 세우는 설계자인 동시에, 그 질서가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관찰자다. 이 엉키고 설킨 미로 속에서 발견되는 '우연한 아름다움'이야말로 그가 작업을 이어가는 이유다.
#촉각적 풍경
사람들은 그의 작업에서 인공지능시대 신경망을 보기도 하고, 도시의 소음을 읽어내기도 한다. 때로는 부드러운 직물의 감촉을 떠올린다. 무엇이든 좋다. 그는 시각적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넘어, 관객의 손끝이 반응하는 촉각적 풍경을 제시하고 있다. 바탕색의 깊은 심연 위로 떠오르는 이 유기적인 색실 선들의 망은, 우리를 둘러싼 복잡한 관계의 은유이자 작가를 지탱하는 정신적 골조다.
결국 안정숙의 작업은 '최소한의 행위로 얻어낸 최대치의 혼돈'이다. 그는 오늘도 캔버스라는 이름의 질서 위에, 그만의 부드러운 반란을 한 줄씩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