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사 돈황을 내려 놓을 수 있었다”서용 작가
28일까지 인사아트센터 ‘천상언어’전 한국 전통 목판화와 불화 도상 차용
[화이트페이퍼=임채연 기자] 천 년의 시간과 사막의 바람을 품은 예술, 서용(b.1962) 작가의 개인전 ‘天上言語: from the Voice of Heaven to The Bliss of Oasis’가 인사아트센터에서 28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돈황(敦煌) 유학 시절부터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20여 년 예술 여정을 아우르는 29점의 회화로 구성된다. 동시대 불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며 회화와 정신, 형식과 감성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서용 작가의 전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전시는1층 본전시장과 6층 제6전시장으로 나뉘어 구성된다. 본전시장에서는 돈황 벽화의 기법을 정교하게 재현하며 한국미술계에 서용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2000년대 초반의 대표작들이 전시된다. 이 작품들은 고대 불교 도상의 재현을 통해 작가가 동시대 불화의 조형적 기틀을 다져가던 시기의 성과물이다. 대표작으로는2003년작 ‘樹下說法圖千佛圖’, 2004년작 ‘약사변상도’등이 있다. 황토, 석채, 안료, 금박, 마(麻) 등의 재료를 사용하여 고대 벽화의 물질성과 질감을 복원해낸 대작이다.
6층 제6전시장에서는 작가의 최근작이 전시된다. 더 이상 ‘돈황’의 도상에 머물지 않는 모습이다. 작가는 ‘돈황을 포함해서 다 내려놓았다’고 고백한다. 그 자리에 새로운 상상력을 채워 넣는다. 문자와 형상을 해체하고 조합하여 ‘규정된 형태를 벗어난’회화를 시도한다.
“그림은 이래야 하고 이런 것이 좋은 그림이라고 하는 그 기준조차도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그림으로 즐기고 행복하면 그걸로 만족한다.”
전시 제목 ‘천상언어’는 작가가 돈황에서 수행했던 불교 도상 연구와 창작 전반을 아우르는 핵심 개념이다. 그는 종교적 도상을 ‘신의 언어’로 간주한다. 이를 꽃, 나무, 바람의 형상으로 감각화한 회화적 실험을 지속해 왔다. 그의 작업은 문자나 형상의 고정된 의미에서 벗어나, 이를 분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추상적이고 비정형의 미감을 창출한다. 이는 전통 불화의 형식을 빌리되, 그 내용을 해체하고 새롭게 구성함으로써 예술을 통한 영적 언어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과정이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작가가 과감히 돈황 도상의 권위를 탈피하고 한국 전통 목판화와 불화의 도상을 차용하여 더욱 한국적인 정서를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그는 동아시아 불화 전통과 현대적 감각 사이에서 조형적 균형을 이루며, 고대의 형식을 오늘의 감성으로 변주해 낸다. 이는 동시대 관람자에게 낯설지만 깊은 울림을 전하는 작업이다. 불화의 ‘현재성’을 회복하려는 작가의 의지가 고스란히 투영된다.
“이제 또 나는 청춘을 같이했던 돈황을 비우고 나로 살아가고자 한다.”
이제 그의 작품은 과거를 재현하는 방식이 아닌, 시간과 감각을 관통하는 현재형 불화의 실천이다. 전통의 형식은 남기되, 그 내용은 비우고 다시 채움으로써 시대를 초월하는 조형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를 신의 언어를 전하는 ‘무당’에 비유하는 서용은 자신의 예술이 누군가에게 위안과 기쁨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신이 예술가를 통해 세상에 주는 선물이라고 말한다. 오랜 시간 돈황의 그늘 속에서 치열하게 자신만의 길을 모색해 온 그는, 이제 과거의 허물을 벗고 자신의 본질로 돌아가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천상언어’는 바로 그 첫걸음이자, 불교 회화의 동시대적 재탄생을 향한 의미 있는 실천이다.
서용 작가는 서울대 학부에서 채묵(彩墨)의 전통회화를 연구하고 이어 북경으로 달려가 중앙미술학원 벽화과에서 석사를 마쳤다. 이어 그는 8년간 현장에서 돈황 벽화와 본격적으로 대면하면서 연구에 매진했다. 그 결과는 난주대학(蘭州大學)에서 돈황학 박사학위로 이어졌다. 우리가 고구려 고분벽화의 후예라는 점에서 그의 작업여정은 각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