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 증권사, 고객 수천억 손실 채권 돌려막기 적발

금감원, 채권형 랩 신탁 검사 결과(잠정)

2023-12-18     고수아 기자
사진=화이트페이퍼

[화이트페이퍼=고수아 기자] 증권사들이 그동안 일임형 자산관리 상품인 채권형 랩어카운트와 특정금전신탁 관련 돌려막기로 고객 손익을 다른 고객에 수천억원씩 전가해오는 등 위법 관행을 이어온 사례가 금융감독원 검사 결과 대거 적발됐다.

금감원은 17일 '채권형 랩·신탁 검사 결과(잠정)' 자료를 통해 9개 증권사의 채권형 랩·신탁 업무실태에 대해 집중 점검을 실시한 결과 업무처리 관련 위법 사항과 리스크 관리, 내부통제상 다수의 문제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5월 하나증권을 시작으로 KB증권, 유진투자증권, 교보증권, 한국투자증권, SK증권,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유안타증권 등 9개 증권사의 채권형 랩·신탁 업무 실태를 점검했고 모든 증권사에서 자전거래 사실 등이 확인됐다. 

채권형 랩‧신탁은 증권사가 고객과의 일대일 계약을 통해 자산을 운용하는 대표적인 금융상품이다. 다수의 고객자산을 집합 운용하는 펀드와 달리, 개별 고객의 투자목적과 자금수요를 감안한 단독 운용이 가능하다는 특징 때문에 법인 고객의 단기자금 운용수단으로 선호돼왔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 자금시장 경색으로 다수의 법인 고객들이 가입 중이던 랩‧신탁의 환매를 요청한 가운데 CP 등 편입자산의 시장 매도가 어려워져 환매가 중단되거나 지연됐다. 일부 증권사는 고객 손실을 회사의 고유자산으로 보전해줬다는 의혹마저 제기됐다. 

금감원에 따르면 랩‧신탁 운용시 특정 투자자의 이익을 해하면서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일부 운용역은 만기도래 계좌의 목표수익률을 맞추려고 '불법 자전거래(연계‧교체거래)'를 통해 고객계좌 간 손익을 이전했다. 

예를 들어 A증권사는 작년 7월 이후 다른 증권사와 총 6000여회의 연계‧교체거래를 통해 특정고객 계좌의 CP(기업어음)를 다른 고객의 계좌로 고가 매도해 5000억원 규모의 손실을 고객 간 전가했다.

개별 증권사의 손실전가금액은 수백∼수천억원 규모고, 관련 혐의자(운용역)는 해당 9개사의 30명 내외다. 

금감원은 "비정상적인 가격의 거래를 통해 고객에게 손해를 전가한 행위는 판례에 따를 때 업무상 배임 소지가 있는 중대 위법행위에 해당하므로 주요 혐의사실을 수사당국에 제공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자료=금감원

증권사가 투자자에게 일정한 이익을 사후 제공한 사실도 드러났다. 증권사 등 금융투자업자는 원칙적으로 투자자에게 일정한 이익을 사후 제공해선 안 된다. 

그러나 수익률이 악화돼 목표치 달성이 어려워지자, 대표이사 등 주요 경영진의 결정 하에 고객계좌의 CP를 고가 매수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제공한 증권사도 금감원에 적발됐다.

예를 들어 B 증권사는 다른 증권사에 가입한 특정금전신탁을 통해 작년 11∼12월 중 고객 랩‧신탁의 CP 등을 고가매수(연계‧교체거래) 해주는 방식으로 총 1100억원 규모의 이익을 제공했다. 

이 밖에도 ▶편입자산의 잔존만기·신용등급 등을 위반해 랩·신탁을 운용한 계약조건 위배 사례 ▶목표수익률 달성을 위해 동일 투자자의 랩 계좌 간 위법 자전거래를 한 사례 ▶고객자산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펀드 운용에 관여한 OEM펀드 운용 사례 등도 적발됐다. 

금감원은 이번 검사 결과 확인된 위법행위를 신속히 조치해 랩·신탁 시장 질서를 확립하겠다는 방침이다. 

금감원은 "아울러, 운용상 위법행위로 손실이 발생한 랩·신탁 계좌에 대해서는 금융투자협회와 증권업계가 협의해 객관적인 가격 산정 및 적법한 손해배상 절차 등을 통해 환매가 이루어질 수 있게 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