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데일리가 뽑은 '올해의 책'
북데일리가 뽑은 '올해의 책'
  • 김지우기자
  • 승인 2010.12.26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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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연습에도 좋아...'원더풀 사이언스' '쿡스투어' 등 10권

[북데일리]  많이 팔린 책이 아니다. 유명한 책도 아니다. 좋은 책이다. 특히 저자의 글 솜씨에 중점을 두었다. 양서가 드문 시대, 글쓰기 연습에 딱 맞는 책은 더 드물다. 둘의 교집합 속에서 가장 빼어난 ‘올해의 책’을 골랐다.

1. <원더풀 사이언스>(안그라픽스)

세계적인 과학 저널리스트이며 풀리처상 수상 작가인 나탈리 앤지어의 책. 과학작가 답게 빼어난 글솜씨를 자랑한다. 이 책을 읽은 누군가는 훗날 과학작가가 될 것이다.

#1. 미용실.

머리를 하고 있는 동안 헤어스타일리스트로부터 푸에르토리코에 갈 예정이란 말을 들었다. 그녀는 그곳에 가면 꼭 북서쪽에 있는 '아레시보 전파 망원경'을 보고 오라고 조언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내가 마치 세제 공장이라도 가보라고 한 것처럼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한참 만에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제가 대체 거길 왜 가야죠?"

"세상에서 가장 큰 망원경 가운데 하나거든요. 게다가 일반인도 가서 볼 수 있고요. 아름답고 멋진 데다 벼랑 끝에 서 있는 모습이 마치 거울로 만든 거대한 1960년대의 사탕접시 같아요."

"흠..."

헤어스타일리스트는 그러더니 내 앞머리를 싹둑 잘라 버렸다.

"게다가 멋진 과학박물관도 함께 있어요. 우주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되실 걸요?"

"아시다시피 전 그런 쪽 기술자는 아니잖아요."

싹둑, 싹둑, 싹둑, 싹둑, 싹둑.

"게다가 조지 포스터가 나온 '콘택트' 촬영지이기도 하고요."

나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매달렸다. 피라니아 같은 가윗날은 멈추지 않았다.

"난 한 번도 조지 포스터를 좋아해본 적이 없어요. 아무튼 충고는 고맙게 들을게요."

"안녕, 여보!" 집에 들어서는 나를 보고 남편이 말했다. "세상에, 대체 그 머리 어디서 한 거야?" (11쪽)

2. <버스트>(동아시아)

버스트(BURSTS). 한 순간에 터지다. 동명의 책 <버스트>는 지적 호기심이 터지는 책이다.

저자는 개인의 삶에, 인류의 역사에 버스트가 중요한 키워드임을 주장한다. 어느 순간 갑자기 e메일이 쏟아지고, 전화가 울리고, 손님이 찾아오고 하는 일이 몰리는 현상이다. 인간의 행동에는 긴 휴식기 뒤에 격렬한 활동이 도래하는 패턴이 숨어 있다는 것.

인류의 진화 역시 폭발적이었다. 과거 수백만 년의 화석 기록을 보면 종들은 진화적으로 아주 조금만 변했거나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종들은 진화 역사에서 한순간에 해당하는 수만년이라는 짧은 기간 만에 등장하곤 했다.

책은 단순히 무작위적이라고 알고 있던 인간의 행동 속에 우리가 모르는 심오한 법칙이 숨어 있다고 전한다.

책에 등장하는 버스트의 극적인 사례로 꼽는 인물은 헝가리 영웅 죄르지 세케이다. 그는 갑자기 솟아올랐다가 참혹하게 몰락했다. 고작 석달의 시간. 이 비운의 혁명가는 불속에서 끄집어낸 왕좌에 앉힌 채, 벌겋게 달구어진 왕관을 씌워지는 형벌을 받았다.

책은 죄르지 세키이 외에 풍부한 사례를 통해 인간 행동(나아가 역사)의 무작위성과 예측가능성 여부를 탐구한다. 주인공 이야기만큼 흥미롭다.

3. <쿡스투어>안그라픽스. 2010).

뉴욕 맨해튼의 유명 레스토랑 셰프인 앤서니 보뎅의 세계 음식 여행기다. 글이 작가 뺨친다. 참으로 발칙하다. 만약 글쓰기보다 요리를 더 잘 한다면, 정녕 그는 최고의 요리사일 것이다.

"나는 이토록 맛있고 신선한 참치를 다시는 못 먹을 거라는 생각에 그 자리에 선 채로 600그램이 넘게 먹어치웠다. 누가 사랑이 뭐냐고 물으면, 난 새벽 4시에 참치 대뱃살 600그램을 먹어 치우는 거라고 대답할 거다."-일본 새벽 수산시장에서

"실로 끔찍한 맛이다. 제비집은 괜찮다. 달콤새콤한 국물도 그럭저럭 괜찮다. 하지만 건더기는 감당하기가 힘들다. (중략) 도저히 안 되겠다. 젓가락을 미적미적 늘려서 완숙한 제비알과 축축 늘어지는 제비집을 집어 억지로 깨작거리기도 하고, 내키지 않지만 다리나 가슴을 집어서 가느다란 뼈를 발라내고 먹기도 한다. 하지만 제비알과 대추와 비둘기 뼈와 껍질에서 분리되어 미끄덩거리는 야자열매 속살 사이로 부리와 눈이 그대로 붙은 비둘기 머리가 떠오르면... 서둘러 방으로 돌아와서 모기장 아래 누워 신음하며 뒹군다. 아무래도 곧 죽을 것 같다."-베트남 제비집 수프를 먹고

4. <죽어도 못 잊을 어머니 손맛>(이숲)

미식가들은 놓쳐선 안 될 책. 좋은 글, 명문에 관심 있는 이가 봐야할 책. 어머니 손맛과 옛 추억, 그리움에 잠기고 싶으면 절대 놓쳐선 안 될 책. 출신 지은이 구활이 쓴 77가지 고향-토속-자연 음식 이야기가 담겨있다.

#모래무지

은자(隱者)다. 선승(禪僧)이다. 강물 속 모래성에 사는 모래무지를 두고 그렇게 말한다. 모래무지는 2급수 이상에서 산다. 간화선(看話禪, 화두를 들고 참선에 드는 수행법)에 들어 모래 밖으로 두 눈만 멀뚱하게 내놓고 있을 뿐, 먹이를 그리 탐내지도 않는다. 주변 소음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을 잡으러 다가오는 음험한 그림자를 봐도 달아나지 않는다. 피할 수 없을 땐 몸을 그냥 내준다.

모래무지는 덩치에 비해 위장이 매우 작다. 물속 곤충을 잡아먹고 사는 육식성 어종이지만 조금 먹고도 잘 버틴다. 잡식성 잉어, 붕어처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지 않는다. 토굴 선방에서 하루 한 끼 솔잎 생식으로 버티는, 하얗게 늙어버린 선승을 닮을 데가 있다.

모래무지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해 감히 물어볼 수는 없지만 모래 굴속에서 온종일 견디는 걸 보면 금강경, 화엄경, 법화경, 경전이란 경전은 벌써 떼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꿰뚫고 앉아 있는 것 같다. 산길을 걷다 스님을 만나면 저절로 두 손이 올라가 합자하듯 강물 속 모래무지, 사은(沙隱)선사를 생각하면 저절로 ‘스님’ 소리가 나올 법하다.

5.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글항아리)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삶을 다룬 책이다. 특별하다. ‘스물여섯의 사람, 사물 그리고 풍경에 대한 인터뷰’라는 부제에서 따뜻함이 전해진다. 누군가의 가슴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는, 가만히 이야기 하고, 곁에서 들어주는 사람과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인터뷰이는 허리우드클래식 김은주 사장을 시작으로 연극배우 택배기사 임학순씨, 시간강사, 군무 발레리나 안지원씨, 성 베네딕도 요셉수도원, 절판되는 책, 우표, 막걸리까지 다양하다.

 ‘흔희들 삶을 여행에 비유하지만, 삶에서 맞닥뜨리는 세상은 새로운 여행지와 달리 대개는 외롭고 황량하다. 그것은 우리가 지나쳐갈 나그네나 구경꾼이 아니라, 불편한 시선을 무릅쓰고 어떻게든 비집고 껴 앉아야 하는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좋은 세상은 그들이 마음 편히 앉을 수 있는 빈자리가 넉넉한 세상, 지금보다는 휠씬 헐겁고 느슨한 세상이라고 나는 믿는다.’ p 313

6. 동물들의 생존게임(웅진지식하우스)

먹고 먹히는 사례를 통해 동물들의 지능적이고 치밀한 싸움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를테면 '검독수리 vs 거북' '혹등고래 vs 청어'와 같은 식이다. 저자는 '자연은 놀라운 작품들로 가득하다'는 말로 책을 연다. 이 문장처럼 책 속의 풍경은 신비롭다. 맛깔스런 글이 흥미를 더한다.

#붉은등때까치

'도마뱀은 막 공중을 날았다. 새가 날카로운 부리로 도마뱀을 내려쳤다. 그러나 도마뱀은 여전히 살아있다. 새가 도마뱀을 움켜쥐고 가까운 가시 울타리로 날아갔다. 그 때까지만 해도 도마뱀은 새 둥지에서 도망갈 기회를 엿봤다.

하지만 새는 가시덤불 깊숙이 자리 잡은 둥지로 날아가지 않았다. 대신 도마뱀을 가시가 촘촘하게 박힌 근처의 나뭇가지로 데려갔다.

도마뱀은 그곳에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딱정벌레, 들쥐, 뱀... 포획된 곤충과 동물들이 가시에 꽂혀 쪼로로 전시되어 있던 것이다. 마치 박물관 전시품처럼 말이다.

새는 가시에 노획물들을 모두 꿰어놓았다. 딱정벌레는 아직도 파란 하늘을 향해 헛되이 다리를 버둥거리고 있다. 그 옆에 들쥐의 꼬리는 이미 스탠드 전기선처럼 축 늘어져 있다.

하나, 둘. 셋...일곱, 여덟 마리...

도마뱀은 숫자를 셌다. 온화한 아침 햇살 속에서 그것들은 마치 정신 나간 생물학자의 전시품처럼 보였다. 놀랄 겨를도 잠시. 이미 새는 가지에 내려앉았고 도마뱀은 아홉 번째 꼬챙이에 걸린 전시품 처지가 되었다.'

7. 아침미술관(21세기북스)

6개월간 매일 1편씩 감상할 수 있도록 181편의 그림과 소개말을 담았다. 저자는 이명옥 사마나미술관 관장. 그림을 널리 알리고, 동시에 그림을 활용해 깨달음을 얻도록 이끈다.

#안창홍 화가가 그린 <불사조>(1985, 종이에 채색)

새가 죽어가고 있다. 목에 화살을 맞았다. 끔찍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수많은 깃털이 생명으로 바뀌고 있다. 깃털이 새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화가 안창홍에 따르면 '눈을 부릅뜬 채 숨져가는 새는 과거 군사정권 시절 희생당한 민주투사들의 영혼, 배경의 붉은 색은 희생자들의 숭고한 피, 새의 목을 관통한 3개의 화살은 공권력을 상징한다'.

[하얀 새는 비록 처참하게 죽어가지만 어미의 배를 가르면서 수많은 새끼 새가 태어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민주투사를 죽인 대가로 수많은 미래의 민주열사들이 탄생한다면 제아무리 서슬 푸른 독재 권력일지라도 간담이 서늘해지지 않을까요.] 0111쪽 

그림은 죽음과 생명의 탄생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동시에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합일을 이루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곁들였다.

8.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현대문학)

작가의 박완서의 산문집이다. 살다보면 여러 갈레 길을 만난다. 그로 인해 로버트 프루스트의 시처럼 '가지 않은 길'은 누구에게나 회한을 안긴다. 작가가 운명적으로 바뀐 삶의 진로와 그 회환을 토로한 글이 단연 눈길을 붙잡는다. 갈림길에 서성이며 삶을 선택해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내가 꿈꾸던 비단은 현재 내가 실제로 획득한 비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중략) 나는 누구인가? 잠 안 오는 밤, 문득 나를 남처럼 바라보며 물은 적이 있다.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영혼이다. 80을 코앞에 둔 늙은이이다. 그 두개 의 나를 합치니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푸른 영혼이, 80년 된 고옥에 들어앉아 조용히 붕괴의 날만 기다리는 형국이 된다. 다만 그 붕괴가 조용하고 완벽하기만을 빌 뿐이다. p 25~26


9. <발명 마니아>(마음산책)

창의적 발상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책을 읽으면서 '큭'하고 웃을 책. 상상력이 기상천외하다. 일본의 저술가 요네하라 마리의 발명에 관한 에세이다. 발명의 범위와 상상력이 예사롭지 않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 기발하거나 엉뚱할 수 있다.

우리는 엄마나 사랑하는 연인이 늘 곁에 있길 원한다. 그들의 품과 따뜻한 손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에 저자는 다음과 같은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적어도 더할 나위없는 소중한 존재가 해주는 스킨십을 기억만이라도 해서 충실히 재현할 장치를 고안할 수는 없을까?' 345쪽

그리하여 도달한 발명품은 '스킨십 재현 수건'이다. 몸을 두를 수 있을 정도의 크기에 각종 센서를 단다. 이 센서가 상대의 스킨십을 기억했다가 나중에 재현한다. 발명품의 효율성을 떠나 발상 자체가 따뜻하다. 엄마 품이 그리운 이들에겐 절실할 수 있는 발명품이 아닐 수 없다.여기에 저자는 다음과 같은 위트를 잊지 않는다.

프로 안마사일 경우에는 아마 '저작권' 문제를 해결해야만 할 것이다. 안마의 달인쯤 되면 저작권으로 떼돈을 벌 가능성도 생기지 않을까. 347쪽

10. <내 정원의 붉은 열매>(문학동네)

소설가 권여선이 3년 만에 내놓은 신작. 북데일리 서유경 시민기자에 따르면 수록된 7편은 광채가 난다. 재미있다. 특히 문장 하나가 가슴에 박혀버릴 만큼 뛰어나다. 정곡을 찌르는 듯 섬세하고 날카롭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누군가 그대 앞에 찻잔이든 술잔이든 빈 잔을 내려놓는다면 경계하라. 그것이 처음에는 온화하고 예의바른 권유로 보일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그것이 그대에게 가장 잔인하고 난폭한 지배로 돌변할 수도 있으니. 애당초 빈 잔에는 이런 무시무시한 의도가 담겨 있을 수도 있다. p.14

<내 정원의 붉은 열매> 독자의 역시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이 소설집은 애정과 애증의 관계에 대한 소설이다. 불편하게 지속되는 관계에 대해, 무한의 애정을 주지 못하는 가족에 대해 생각한다. 관계와 관계로 이어진 거대한 삶, 그 안에 살고 있는 나를 본다. (서유경)

 ‘찻잔이나 술잔, 밥공기 같은 것이 결코 화분이 될 수 없던 시절에도, 한쪽 모서리가 기운 사다리꼴의 그 방은 내게 충분히 훌륭한 화분이었다. 한때 나는 시루 속 콩나물처럼 동료들과 함께 그 방에서 쑥쑥 자라났다. 나와 동료들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함을 느낄 때마가 나는 미칠 듯이 괴로웠다. 그 당시의 나는 젊기 때문에 차이를 못 견딘다는 걸 알지 못했다. 젊기 때문에 차이를 과장하고 젊기 때문에 차이에 민감하다는 것을 몰랐다. 조사 하나, 어휘 하나에도  이고 살아야 할 하늘을 가르던 시절이었다.’ p.117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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