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방울 '내방 잠그고 대못 박아라'
임방울 '내방 잠그고 대못 박아라'
  • 김현태기자
  • 승인 2010.11.18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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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대머리'로 시대를 풍미한 명창 일대기 나와

[북데일리]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 판소리의 대표작 '쑥대머리'를 아는 이는 범상치 않은 사람이며, 부를 줄 아는 이는 존경받을 사람이다. 둘 다 공통적으로 '흠모'하는 이가 있는데 바로 명창 임방울이다. 그는 '쑥대머리' 하나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남아있는 음반으로 들어보면 약간 탁하게 들리지만, 오히려 그 칼칼한 맛이 매력이기도 하다.

당대 최고의 스타 임방울의 이야기가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 임방울은 그 명성으로 보건대, 극적인 성공스토리를 간직하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관련 자료 또한 충분하리라 여겨진다. 그런데 정반대였던 모양이다. 책의 서문에 보면 저자의 당혹감이 나온다. 자료의 부족과 전설로 덧칠된 일화 속에서 참모습을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 책은 다큐적 시선으로 임방울의 삶과 예술 세계를 차분하고 지적인 시선으로 조명했다. 신화와 소문 속에서 본질을 보고자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배어있다. 득음을 하기 위해 피를 토하거나 똥물을 먹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뼈를 깎는 듯한 수련과정을 부정하지 못한다.

임방울은 땅집을 하나 마련해달라고 매형에게 부탁했다. 땅집은 승려들이 수행하는 토굴과도 같은 집으로, 작은 봉창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흙으로 밀폐해서 지은 집이다. 매형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의 집에 골방을 치운 후, 임방울을 안에 가둔 후 출입문에 대못을 박았다. 그건 마치 그 안에서 죽으면 죽었지 목이 회복되지 않으면 절대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겠다는 결연한 다짐이었다. 55쪽

책은 국악에 대한 지식과 시대상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흔히 소리를 서예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명창에 따라서 마치 붓글씨 해서체처럼 소리를 또박또박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초서체처럼 일사천리로 몰아침으로써 좌중을 주목시키는 사람이 있다. 김연수가 대표적인 해서체 소리를 하는 인물이라면, 임방울은 대표적인 초서체 소리를 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161쪽)

책에 따르면 원래 '쑥대머리'는 임방울 이후에 비로소 유명해진 것이다. 오늘날 판소리 공연장을 평정하고 있는 보성 소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춘향가'에는 '쑥대머리' 대목이 원래 없다. 하지만 지금 현재 보성 소리 명창들은 일부러 '쑥대머리'를 집어넣어서 소리를 한다고 전한다.

임방울의 삶은 현대사를 살았던 인물들이 대개 그렇듯이 식민지 경험과 전쟁의 기억으로 이리저리 찢겨 있다. 그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과장과 신비화라는 몽롱한 그물에 걸려 있으며, 사람들은 벌써부터 그를 전설처럼 대하고 있다. 하지만 실존의 임방울은 20세기 전통 예술의 치열했던 몸부림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그의 삶은 예인의 삶이면서 현대사와 전통 예술의 모순 관계를 그대로 담고 있는 그릇이었다.(193쪽)

이 책은 임방울에 관한 가슴아픈 사건을 새롭게 알려준다. 1959년께 일본 공연 중 조총련 쪽 무대에 선 것. 그로 인해 귀국후 연행되어 고문을 당했다. 저자는 "그로 인해 체력이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고 추정했다. 이후 그는 김제의 한 무대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등졌다.

죽음은 한 사람의 삶을 규정해준다. 그에 대한 애도사는 그가 남긴 족적을 말해준다.

'풍전등화처럼 깜박거리는 우리 판소리의 명맥을 지키는 최후의 몇 사람 가운데서도 불세출의 명창으로서 민속 예술을 그렇게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줄기를 이으려고 그렇게도 걱정하던 임방울 씨가 세상을 떠났다. (유기룡, 임방울씨를 보내면서, 1961년 동아일보)

한 외국인(앨런 헤이만)은 한국은 국보 하나를 잃었다며 애통했다.

'국민과 정부가 이 사실에 눈뜨지 않으면 한국은 장차 언젠가는 진정한 국악 예술이란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을 때까지 아무런 재산을 준비하지도 못하고 위대한 국악 예술가를 계속 잃을 것이다.'

50년이 지난 지금, 국악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앨런 헤이만의 예언이 비수처럼 꽂힌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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