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칠 장인 전용복' 깜짝 놀랄 이름
'옻칠 장인 전용복' 깜짝 놀랄 이름
  • 김지우기자
  • 승인 2010.05.23 2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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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쥐어짜 아로새긴 '전통예술의 장인'

 

[북데일리] 옻닭, 옻칠. 옻에 대해 우리가 아는 단어의 전부가 아닐까 싶다. 옻. 한자로 쓰면 '칠(漆)'이 된다. '漆'자는 옷칠할 칠자다. 즉 옻과 칠은 같은 말이다. 따라서 옻칠은 역전앞과 다름없는 동의어 반복이다. 이 지식을 몰랐다면, 10열 배 쯤 더 깜짝 놀랄 '옻'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한국인 전용복>(시공사. 2010)은 옻칠의 대 장인에 관한 믿기 힘든 사연을 담은 책이다. 옻칠이 뭐가 그리 대단할까. 옻칠은 민간에서나 해왔던 비정통적인 장식기법, 좋게 말하면 예술품을 만드는 전통기법 쯤 하나다. 이 책은 그 무지한 관념을 산산조각 낸다. 먼저 옻칠은 신비 그 자체다. 책은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옻칠은 지구상의 어떤 물질보다 오래 그 생명력을 유지한다. 옻칠은 나무에서 추출한 수액이므로 자연친화적이며 인체에 유익한 물질을 생성한다. 옻칠은 무엇보다 아름답다. 304쪽

옻칠의 효능을 쉽게 말하면 이렇다. 모나리자는 변형을 막지 못하지만 팔만대장경은 완벽히 보존됐다. 팔만대장경은 마감재로 옻칠을 썼기 때문이다. 옻칠에 대해선 이 책이 상세한 설명을 대신할 것이다.

전용복은 누구인가. 언론에 간간이 소개됐던 옻칠장이다.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유명하다. 그가 유명해진 계기는 국보급 건물인 '메구로가조엔'의 복원 공사를 맡고부터다.

부산의 작은 공방. 우연히 한 일본인이 방문했다. '중국집'(아서원) 밥상 하나를 수리해달라고 맡겼다. 학의 자태를 나전으로 입힌 아름다운 밥상. 소위 나전칠기 기법이다. 나전칠기란 목기에 나전을 가공하여 부착한 뒤 칠을 한 공예품. 나전은 조개 껍데기를 썰어 낸 조각이다. 전용복은 이 밥상을 말끔히 수리해줬다. 그런데 이 밥상이 인생을 뒤흔들 일을 가져왔다.

운명의 밥상.

'무척 만족한다는 답변이었다. 그러나 곧이어 들려오는 소리에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업었다. 지난번과 똑같이 수리해야 할 밥상이 무려 천 개나 있다는 것이다. 동네 중국집쯤으로 알았던 아서원이라는 곳이 일본에서 그토록 유명한 '메구로가조엔'이었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책이 전하는 전용복의 인생은 감동 드라마다. 별 볼일 없던 청년이 일본을 거쳐 세계적인 칠예작가로 우뚝 서기까지의 과정은 눈부시다. 뜨거운 열정과 피나는 노력, 평범하지만 이 단어는 사족 없이 그의 인생을 설명해준다.

아무리 이렇게 말해도 예술에 관심 없고, 전통이 고리타분하게 여겨지는 이들에게 옻칠은 하품이 나올 말이다. 혹시 이런 이야길 들으면 달라질까. '옻칠 엘리베이터와 옻칠 바이올린, 옻칠 첼로, 옻칠 전자기타'. 이 정도에도 감흥이 없는 이에겐 '옻칠 시계'를 들이대면 감각을 찾을 터이다. 옻칠 시계는 8억4천만 원의 세계 최고가다.

전용복 장인이 만든 세계 최고가 시계.

사계산수화의 여름 중 일부. 전용복 장인의 인생 최고의 역작이다.
        
성공스토리에서 우리가 배우는 점은 대개 꿈, 열정, 감동이다. 이 책은 여기에 부끄러움 하나를 안긴다. 정작 옻칠의 나라여야 할 우리 후손들은 옻칠의 'ㅇ'자도 모른다.  일본을 뜻하는 Japan을 소문자 japan으로 쓰면 '옻칠'이 된다. 일본은 옻칠의 나라라 불릴 만큼 전통이 깊다. 그러나 그 기원은 한국이 아닐까.

옻칠과 연관된 배용준 이야기가 흥미롭다.

"지난 2009년 2월, 한류스타 배용준이 일본에 비밀리에 입국해 전용복을 찾았다. 옻칠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배용준은 옻칠을 배우는 내내 맨손으로 얼굴과 손이 퉁퉁 부은 채로 잠도 거의 자지 않고 옻칠의 매력에 빠졌다. 이후 배용준은 자신의 책에 전용복에게 옻칠을 배우는 과정들을 기록했고, 아버지의 사랑을 또 한 번 느꼈다고 회고했다."

이 책을 읽은 이들은 반드시 하나의 갈망을 갖게 될 게 분명하다. ‘일본 메구로가조엔을 가보고 싶다.’ 이어령 전 장관의 말이 그 갈망을 부채질 한다.

“지금도 일본 메구로가조엔에서의 하루를 잊을 수가 없다. 온통 그 관내 전체가 마치 전용복의 전시장처럼 아름다운 칠공예 작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감동이기 전에, 자랑이기 전에, 슬프고 분한 느낌이기도 했다. 분명 이것은 책이 아니다. 고난의 그 기록들은 바로 그 자체가 옻칠이고 창조를 향한 열정은 영롱하게 깎아낸 나전의 빛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도달한 탐스러운 결실은 일본으로, 세계로 가지를 뻗는 한국 칠공예의 긍지이며 희망이다.”

메구로가조엔 현관 입구에 있는 나전 작품 '천마도'. 완벽한 조선기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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