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간판 그리다 '세계광고계 별'
동네간판 그리다 '세계광고계 별'
  • 김현태기자
  • 승인 2010.04.14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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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기와 아이디어 이제석씨... '한국 루저'가 일냈다

 

"누군가에게 이 계단은 에베레스트 산입니다." -광고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클리오 어워드 동상 수상작.

[북데일리] [강추 이책!] 별 볼일 없던 동네 '간판쟁이'가 세계적인 광고인이 됐다? 귀가 솔깃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그는 한국에서 대기업 시험에 줄줄이 낙방한 '루저'였다. <광고천재 이제석>(학고재. 2010) 이야기다.

10만 원짜리 인생. 이제석 씨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변변히 할 일이 없어 동네 간판 디자인을 해줬다. 어느 날 국밥집에서 '영업'을 했다. 간판을 바꿔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것. 그때 옆에서 밥을 먹던 ‘찌라시’ 명함집 아저씨가 한마디 던졌다. 10만원이면 떡을 칠 터인데, 30만원을 들일 필요가 뭐있냐.

이 말을 듣고 열 받은 그는 독기를 품었다. '진짜 실력으로 세상과 부딪쳐보자.' 그리곤 보따리를 싸 뉴욕으로 떠났다. 손에 든 돈은 500달러. 어느 날 그는 유명인사가 되어 돌아왔다. 몸값을 따지자면 아마 최소 연봉 1억은 될 터이다. 10만 원짜리 인생이 몸값을 수백 수천 배로 불린 셈이다.

 

학창시절 그는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만화보기가 취미였고, 불만을 그림으로 끼적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중 미대를 가보면 어떻겠느냐는 선생님의 한마디가 힘이 됐다. 미술학원에 등록했다. 좋아하는 일이니 열심히 했고, 계명대 미대에 입학했다.

기쁨도 잠시. 졸업 후 그를 기다린 것은 '루저'였다. 수많은 기업에 입사원서를 냈지만 단 한군데도 면접 통보를 받지 못했다. 광고 공모전에 한 번도 당선된 적이 없었다.

"실력보다 스펙의 위력이 더 큰 게 한국 땅이었다. 심지어 난 미술학원에서도 스펙에 밀려야 했다." 25쪽

뉴욕에서 그가 다닌 학교는 'School of Visual Arts'. 간판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광고계 실력파가 있는 곳. 그는 세계광고계의 걸출한 스타인 프랭크 안셀모 교수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돈이 없던 그는 단칸방에서 '거지처럼' 살았다. 동양인에 대한 냉대, 게다가 '혹독하고 잔인한' 수업. 그러나 그는 꿈을 향한 발걸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꿈은 서서히 현실이 되었다. 학교 다니면서 현지의 공모전에 줄기차게 도전한 결과, 드디어 대어를 낚은 것이다. 2007년 원쇼 광고제 공모전의 금상(최고상). 책 표지에 나와있는 '굴뚝총'이 출품작이었다. 그가 다니던 학교 학생이 그렇게 큰 상을 받은 건 이제석씨가 처음이라고 한다. 그의 꿈에 날개가 달리던 순간이었다. 이후 유수의 광고상을 휩쓸었다.

책엔 이제석씨가 출품한 작품이 대거 실려 있다. 성공스토리 자체가 재미있는데다 광고 이미지와 아이디어가 놀라워 탄성을 지르게 한다. 특히 광고를 제작하게 된 배경과 과정이 영감을 준다.

'건물 옥상 위로 삐죽 솟은 굴뚝을 보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내 눈에는 총알이 튀어나가는 총열로 보였다. 눈에 뭐가 씌어도 단단히 씐 거다. 헛것을 자주 보는 체질이랄까? 그 덕에 내 광고 인생을 180도 바꿔 놓은 '굴뚝총'이 만들어졌다.' 61쪽

 

기발하다는 말 외에 형용하기 어려운 '굴뚝총'은 무심히 한적한 거리 풍경을 보다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었다.

'재빨리 디카를 꺼내 한 컷 찍었다. 나는 하이킹을 그만두고 후닥닥 집으로 돌아와 총기 사이트를 뒤졌다. 그 총의 몸통 부분을 좀 전에 찍어온 굴뚝 사진과 조합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었다.'

뉴욕에서 만든 이 굴뚝총에서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독도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그는 숨 가쁘게 달려왔고 작품을 일궈냈다.

 

"섬 도둑질 그만"- 일본의 야욕을 고발하기 위해 벌인 게릴라 퍼포먼스. 뉴욕 맨해튼.

독자들은 그이 작품들을 보면서 대체 그 창의성이 어디에서 오는 지 궁금해질 터이다. 그는 한마디로 "파괴에서 나온다"고 못 박는다. 세상은 모순과 역설로 가득 차 있으며, 그는 자기만의 방식대로 '판'을 바꿨다는 것.

"남들이 옳다고 하는 것에 목을 맬 필요는 없다고 본다. 취직이든 성공이든 남들 하는 대로 하면 극소수만 목적을 이룰 뿐이다. (중략) 그래서 나는 세상으로 나아갈 때 자신에게 유리한 룰을 만들어 싸워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215쪽

그의 이야기는 창의성을 죽이는 ‘개떡 같은’ 세상을 향해 날리는 통렬한 한 방이다. 더불어 출구 없는 젊은이들에게 보여주는 금빛 열쇠다. 루저라고 가만히 앉아 있을쏜가. 당장 판을 바꿔라.

 

"고양이가 고양이답게 생겨야지." - 고양이용 다이어트 사료를 소개하는 광고. 큭하고 웃음이 터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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