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요리' 찾아 세계 맛기행
'마법의 요리' 찾아 세계 맛기행
  • 김지우기자
  • 승인 2010.02.17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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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 뛰어난 요리사의 책 <쿡스투어>

[북데일리] 요리사가 쓴 맛 기행 책은 대부분 요리실력 만큼 맛깔스럽지 못하다. 남다른 미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쓴 '요리 책'임에도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엔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쿡스투어>(안그라픽스. 2010)는 선입견의 허를 찌른다.

이 책은 뉴욕 맨해튼의 유명 레스토랑 셰프인 앤서니 보뎅의 세계 음식 여행기다. 그는 미국 요리 전문 케이블 방송 '푸드 네트워크'에서 '쿡스투어(A Cook's Tour)'를 진행했다. 책은 영상을 글로 옮긴 결과물이다. 저자는  "요리가 마법이 되는 순간을 찾고 싶었다."며 세계를 누볐다.

요리가 마법이 되면 혀 역시 마법에 걸린다. 아찔한 미각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실제로 작가는 세계 요리를 맛보면서 종종 마법을 경험했다. 그 순간, 농구공만큼 크지 않은 위를 탓했겠지만, 막상 기록할 때 가장 절실한 것은 글 솜씨였을 터이다. 천만 다행으로 작가의 글 실력은, 짐작컨대 요리솜씨를 뛰어넘는다. 아마 이 이야기만큼 작가를 기쁘게 할 찬사는 없을 것이다.

마법의 순간 중 하나는 일본 편에 등장하는 새벽 수산시장 참치 기행이다. 작가는 자그마치 값이 12,000달러 나가는 참치를 즉석에서 시식하며 느낀 순간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나는 이토록 맛있고 신선한 참치를 다시는 못 먹을 거라는 생각에 그 자리에 선 채로 600그램이 넘게 먹어치웠다. 누가 사랑이 뭐냐고 물으면, 난 새벽 4시에 참치 대뱃살 600그램을 먹어 치우는 거라고 대답할 거다."

독자는 저자의 입을 통해 세계의 진기한 요리를 숨이 턱 막힐 정도로 폭식할 수 있다. 모로코 사막에서 새끼양을 통째로 구워먹는 장면이 압권이다.

작가의 묘사에 따르면 '눈을 찌를 듯한 찬연한 별빛과 쏜살같이 흘러가는 별똥별과 차갑게 빛나는 달 아래 물결 모양으로 펼쳐진 모래 언덕은 얼어붙은 듯은 바다인 양 고요'한 사막이었다.

"놀라운 맛이었다. 마치 솜털처럼 부드러웠고, 비릿한 양 냄새도 어깻죽지나 다리보다 덜했다. 씹는 맛과 넘어가는 느낌 모두 췌장과 비슷했다. (중략) 일단 기대에 어긋나면 금세 실망하기 일쑤였다. (중략) 하지만 양 불알은 최고였다. 이거라면 추호도 망설이지 않고 무조건 추천할 수 있다."

그와 정반대의 경험도 있다. 베트남의 외딴 섬에서 구한 희귀한 제비집 수프 요리를 먹는 순간이 그랬다.

"실로 끔찍한 맛이다. 제비집은 괜찮다. 달콤새콤한 국물도 그럭저럭 괜찮다. 하지만 건더기는 감당하기가 힘들다. (중략) 도저히 안 되겠다. 젓가락을 미적미적 늘려서 완숙한 제비알과 축축 늘어지는 제비집을 집어 억지로 깨작거리기도 하고, 내키지 않지만 다리나 가슴을 집어서 가느다란 뼈를 발라내고 먹기도 한다. 하지만 제비알과 대추와 비둘기 뼈와 껍질에서 분리되어 미끄덩거리는 야자열매 속살 사이로 부리와 눈이 그대로 붙은 비둘기 머리가 떠오르면... 서둘러 방으로 돌아와서 모기장 아래 누워 신음하며 뒹군다. 아무래도 곧 죽을 것 같다."

생생한 요리현장과 시식상황을 전해주는 저자의 발칙한 글재주는 또 다른 묘미다. 저자는 요리 기행을 떠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이 소감을 밝혔다.

'일본에는 꼭 가보고 싶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복어라는 독 있는 생선을 이번에는 꼭 먹어보고 싶었다. 프랑스에서는 어릴 적 처음 굴을 맛본 굴 양식장에 가서 막 딴 굴을 먹어보고, 거기에 아직도 마법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아마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저자가 전해주는 마법을 확인하러 여행을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요리 때문에 배낭을 메고 싶어지는, 흔치 않은 책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은 필독서. 요리에 관심 있거나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들 역시 놓쳐선 안 될 책이다. 강추.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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