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편지, 대신 써드립니다”... 대필로 11대째 '츠바키 문구점'
“간절한 편지, 대신 써드립니다”... 대필로 11대째 '츠바키 문구점'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7.09.21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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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 권남희 옮김 | 예담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츠바키 문구점>(예담.2017)은 특별한 장소다. 겉으로는 그저 평범한 문구 가게로 보이지만, 아름다운 손편지로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을 대신 전해주는 ‘대필가’가 차마 쓰지 못한 편지를 11대 째 대신 써주는 곳이다.

츠바키 문구점 문을 여는 이들은 저마다 사연이 있다. 결혼 15년, 아내에게 새로운 사랑이 생겨 이혼을 결심한 남편은 그동안 신세 졌던 지인들에게 이혼 사실을 알리고자 츠바키 문구점을 찾았다. 아내를 일방적으로 나쁜 사람으로 몰지 않고, 그간 결혼생활이 행복했다는 사실도 꼭 써주길 당부했다. 여름의 끝자락에 만난 사연이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로 접어드는 이야기는 또 다른 남자의 사연을 전한다. 그는 그저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편지를 써 달라 부탁한다. 결혼을 약속했지만, 결국 맺어지지 못한 그리운 사람에게 전하는 안부편지다. 겨울에 찾아온 손님은 이미 죽은 사람의 편지를 부탁한다. 사별한 어머니는 매일 아버지 편지를 기다린다는 안타까운 내용이었다.

츠바키 문구점 11대 대필가 포포는 마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 의뢰인의 마음에 주파수를 맞춘다. 상대의 기분, 의뢰인의 성별과 성격, 의뢰받은 내용에 따라 모든 요소를 세심하게 살핀다. 어떤 필기구를 쓸 것인지, 종이의 재질, 가로쓰기가 적합한지 세로쓰기가 적합한지 등 세심한 노력을 들인다. 포포에게도 선대에 대필은 ‘사기’라 반항했던 때가 있었다. 선대는 대필의 가치와 역할을 ‘제과점의 과자’에 비유했다.

“자기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어도, 제과점에서 열심히 골라 산 과자에도 마음은 담겨 있어. 대필도 마찬가지야. 자기 마음을 술술 잘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은 문제없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을 위해 대필을 하는 거야. 편지를 대필해주길 바라는 사람이 있는 한.” (본문 중에서)

‘대필’에 씌워진 부정적 이미지가 벗겨지는 대목이다. 이곳의 대필은 마음을 잇는 가교이자 위로였다. 편지를 대하는 포포의 자세는 선대로부터 이어져 온 정신이다. 포포도 선대의 말을 가업을 이으며 깨달아간다.

다채로운 사연들을 만나다 보면 편지로 마음을 주고받던 그때 그 시절의 진한 향수를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멀티를 강조할 때 아날로그적 감성을 깨운다. 우리에게도 이런 특별한 장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에 잘 어울리는 책.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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