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도하' 김훈이 전하는 '거친 위로'
'공무도하' 김훈이 전하는 '거친 위로'
  • 정보화 시민기자
  • 승인 2009.11.26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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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 남루한 삶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북데일리] "쓰기를 마치고 뒤돌아보니, 처음의 그 자리다. 남은 시간들 흩어지는데, 나여, 또 어디로 가자는 것이냐." (작가의 말 중에서)

시간은 흐른다. 사람은 두 종류다. 시간처럼 흐르며 이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자리잡는 사람, 다른 이들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며 정작 자신은 아무 곳으로도 가지 못하고 남아 있는 사람. <공무도하>(2009.문학동네)는 강을 건너 떠나지 못하고 이 곳에 남은 사람의 눈으로 본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세상은 야멸차게도 빠르게 흘러간다. 도태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은 급류에 휩쓸릴 걸 알면서도 강을 건너고야 만다. 그 옛날 백수광부가 하릴없이 강을 건너간 것처럼. 물론 목적과 방법을 알고 무사히 건너 새로운 삶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저 시대에, 다른 사람들의 등쌀에 못 이겨 자신의 거점을 떠나게 된다. 의도치 않은 이동들은 잠시 이슈가 되어 한낱 몇 줄 기사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른다. 그러나 그 뿐, 얼마의 시간은 이내 사건을 지운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을 마음 한 켠에 묻어둔 사내가 있다. 기자로서 그들의 삶을 뒤쫓았던 문정수다.

해망, 개발이 되면서 과거가 지워져가는 한 바닷가 도시에서 문정수는 이런 저런 인연들을 취재한다. 개에게 물려 죽은 아이를 찾지 않는 어미, 포크레인에 깔려 죽은 딸의 위로금을 받지 못하는 아비, 과거 미군 부대의 흔적인 고철을 바다에서 건져내며 살아가는 베트남여자와 이방인 남자, 현장에서 금품을 훔치고 지병으로 퇴직한 소방관. 과거와 현재가 뒤얽히며 사람의 인연도 얽힌다. 그 안에서 누군가는 새로운 삶을 얻고, 누군가는 죽음을 향해 간다. 한 도시 속에서 온갖 삶의 모습이 드러난다. 미화되지 않은 생 날것 그대로의 모습들이.

그런 사람들을 취재하며 밤을 새우는 날이면 문정수는 온갖 세상의 냄새를 몸에 붙이고 한 여자를 찾는다. 출판사에서 편집, 번역 일을 하는 노목희는 세상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다. 문정수가 털어내는, 차마 글로 표현되지 못한 세상의 뒷 이야기를 들으며 그저 그랬구나, 그래야하는게 옳다며 맞장구칠 뿐이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여자 앞에서 하루치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뒤에야 문정수는 잠이 든다. 그런 식으로 자신 안에 뿌리 내린 기억의 그림자들을 씻어낸다.

<공무도하> 속 세계는 우리의 현실이지만 낯설다. 어디 한 구석에서라도 생의 아름다움을 찾고 싶지만, 장철수의 말대로 세상살이는 '던적스러'울 뿐이다. 그건 강을 건넌 해망의 여러 사람들도, 혹은 건너지 못한 여러 사람들도 매한가지였다. 돈이 있는 놈은 결국 잘 먹고 잘 살 것이고, 돈 없는 놈은 그저 찌부러져 살아갈 것이다. 문정수는 여전히 없는 놈들의 같잖은 사건이나 뒤쫓아다니며 하루 밤을 또 넘길 것이다.

이 소설은 해망이란 한 도시를 과거에서 미래까지 짚어가며 그 속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춘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단지 해망의 일 뿐만이 아니란 사실을. 해망은 그 곳이 어디든 지금 당신이 발 붙인 그 자리이고,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나, 당신, 그리고 바로 지금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란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시간은 열려있다. 과거로도 미래로도. 우리가 어떻게 발버둥치고 도망가든, 흐른다. 그 속에서 사람이란 어떻게든 살아가게 마련이라 있는대로 혹은 없는대로 삶은 이어진다. 그러니 예서 같이 살자고 말한다. 피하지 않고 마주치는 생이 비록 남루하고, 치사하더라도 같이 살자는 그 말이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크고 따뜻한 위로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삶을 이어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괜찮아, 그러는 게 가장 좋았던 거야.'라는 끄덕임을 선물하고 싶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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