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좋아한다면, 놓치지 말길
한국문학 좋아한다면, 놓치지 말길
  • 서유경
  • 승인 2009.11.23 2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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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가 그리는 삶의 <근처>...기대 이상 만족감

 

[북데일리] 어떤 문학상이든 수상집을 읽은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름만으로 익숙한 작가들의 단편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소설을 직접 만나보지 못하고 소문이나 평론에 의존하기도 한다. 그런 소문만으로  때로 편견에 빠지기도 한다. <2009 황순원 문학상>(중앙북스, 2009) 수상작가인 박민규에 대해서도 그러했다. 그러면서도 워낙 그의 소설에 대한 호평이 많아 수상작 단편<근처>에 대해 궁금증과 기대가 컸다. 결과를 말하자면, 기대 이상이었다.

 수상작 <근처>는 제목을 먼저 정해놓고 쓴 소설이라고 한다. 주인공 호연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소위 성공을 이룬 남자다. 마흔이 되도록 결혼도 하지 않고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온 그에게 삶은 암을 선고했다. 간암 말기, 어떤한 치료도 시도하지 않고, 삶의 끝을 향해 걸어가게 된 것이다. 그는 고향으로 향했고, 근처에 살고 있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게 된다.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지금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친구들의 하루과 호현의 하루는 달랐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호연의 마음이 담담하게 잘 표현된 소설이다. 악착같이 삶을 부여잡고 싶은 욕망, 신에 대한 원망, 그 어떤 절규도 없었다. 그래서 더 슬펐고, 더 여운이 많이 남는 소설이다.

 ‘나는 혼자다. 혼자인 것이다. 찾아 나설 아내도 없다. 설사 네 명의 자식이 있다 해도 나는 혼자일 것이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문득 혼자서, 혼자를 위로하는 순간이다. 삶도 죽음도 간단하고 식상하다. 이 삶이 아무것도 아니란 걸, 나는 그저 떠돌며 시간을 보냈을 뿐이란 사실을 나는 혼자 느끼고 또 느낀다. 나는 무엇인가? 이쪽은 삶, 이쪽은 죽음... 나는 비로소 흔들림을 멈춘 나침반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평생을 <나>의 근처를 배회할 인간일 뿐이다.  ’ p 39

 산다는 것은, 어떠한 삶의 근처를 배회하고 있든지 결국엔   ‘혼자’ 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은 아닐까. 그러나 혼자라는 것이 절대  외롭거나 슬픈 일이 아님을 확인 시켜주는  것도 삶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며 살고 있지만,  삶은 그 자체가 아름답고 숭고한 일이기 때문에.

 <근처>외에도 반가운 소설이 많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은희경의<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는 크리스마스와 눈을 기다리는 누구에게나 간직하고 싶은 추억을 꺼내보게 한다. 암에 걸린 노년의 남자가 점점 다가오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심경을 그린 김숨의 <간과 쓸개>도 인상적이었다. 한국문학을 좋아한다면 꼭 만나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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