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촘촘한 '하루키의 그물'
여전히 촘촘한 '하루키의 그물'
  • 김지우기자
  • 승인 2009.09.07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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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1Q84>... 걸리면 벗어나지 못하는 매력


[북데일리] ‘오후의 태양빛을 받아 앞유리가 유리잔처럼 눈부시게 빛났다.’ 미니스커트에 하이힐 차림 젊고 늘씬한 여자가 대낮에 고속도로 '갓길'을 걸어가고 있다. 이어 하이힐과 코트를 벗고 고속도로 철책을 넘어선다.

체증으로 인해 꼬리를 물고 늘어선 자동차안의 사람들이 이 낯선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현실이 현실 아닌 것처럼 보이기는 여자도 마찬가지다. 여자의 머릿속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맴돈다. '겉모습에 속지 않도록 하세요. 현실이라는 건 언제나 단 하나뿐입니다.'

하루키의 신작 <1Q84>(문학동네. 2009)은 여주인공 아오마메가 독특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시작한다. 이어 아오마메는 모 호텔에 잠입, 청부살인을 저지른다. 아오마메가 놓인 비현실성은 이 사건으로 극대화되고, 독자들은 궁금증의 포로가 된다.

책은 아오마메와 덴고(남)의 이야기가 번갈아 등장한다. 즉, 홀수 장은 아오마메 이야기이고, 짝수 장은 덴고의 이야기다. 두 남녀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전개된다. 이런 식은 종종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기법이다. 어디선가 만나겠지만, 그 지점이 어디인지는 모른다.

하루키의 매력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페이지 순서대로 읽는다면, 독자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번갈아 읽어야 한다. 그런데, 아오마메 이야기를 읽다보면 기대감 때문에 '덴고'를 건너뛴 채1,3,5,7장...으로 읽게 된다.

작가가 알면 어떤 반응을 나타낼지 모르지만 (왜냐하면 번갈아 배치한 것은 분명한 의도가 있었을 터이니), 아오마메를 죽 읽고, 덴고를 죽 읽어도 문제는 없어 보인다. 참고로 필자는 11장까지 읽다 2장으로 돌아와 덴고를 읽었다. 그런데 덴고를 읽다보면, 아오마메를 건너뛰고 싶은 충동이 인다. 그러니 하루키는 대단한 이야기꾼 아닌가!

아오마메와 덴고는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해 있다. 아오마메는 '킬러'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킬러는 아니다. '샤프한 정장을 차려입은 상냥하고 유능한 비즈니스 우먼'이다. 그런 그녀가 왜 살인을 하게 된 것일까. 이유를 불문하고, 소설 초반의 하이라이트는 호텔 살인 장면이다. 무기는 바늘 하나, 목표는 목 뒷덜미다.

"바늘 끝은 살을 뚫고 뇌의 하부에 있는 특정한 부위를 찌르고 촛불을 후욱 불어 끄듯이 심장의 고동을 멈추게 한다.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끝난다.' 83쪽

덴고는 곧이곧대로 사는 소심한 남자다. 직업은 학원강사이며 소설가 지망생이다. 소설 초반 그에게 일어난 사건은 '대필 작업'이다. 여고생이 쓴 소설을 각색하여 유명 작가상을 타게 만드는 역할이다.

여고생은 뛰어난 상상력을 바탕으로 신선한 스토리의 글을 내놓지만, 소설이 되기 위한 구성과 글솜씨가 모자란다. 반면 덴고는 작가적 글재주가 있다. 두 사람을 공통적으로 아는 편집장이 둘을 부추겨 공모를 한다.

하루키 책의 특징 중 하나는 일상 속의 주인공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독자를 특유의 기묘함으로 이끈다는데 있다. 야오마메 편의 고속도로 신과 호텔 청부살인 장면이 그렇다. 덴고 편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고생의 존재가 그렇다. 추가한다면 이런, 흔치않은 장면도 해당될 것이다.

'(덴고) 어머니는 블라우스를 벗고 하얀 슬립의 어깨끈을 내리고 아버지가 아닌 남자에게 젖꼭지를 빨리고 있다.' 205쪽

책 제목 '1Q84'은 일견 'IQ84'로 읽힌다. 그런데 Q는 Question의 의미다. 그런 면에서 조지 오웰의 소설을 '1984'가 더 가까워 보인다.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아직 시작을 안했거나 끝까지 읽지 않은 독자에게 저자가 주는 힌트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현실이라는 건 언제나 단 하나뿐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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