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닭 키우며 BMW 모는 '기인' 사연
[화제의 책] 닭 키우며 BMW 모는 '기인' 사연
  • 김지우기자
  • 승인 2009.06.10 1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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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좋아 산에 사네>...발로 뛰며 옮긴 28명 삶

[북데일리] 지리산 일대엔 수천 명의 낭인이 산다. 수행자, 귀농인, 예술인, 종교인, 무속인... 대체 그들은 왜 산에서 살까. 산에 사는 모습은 어떨까.

<산이 좋아 산에 사네>(창해. 2009)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알려주는 책이다. ‘자연주의 에세이스트‘란 직함을 달고 있는 저자 박원식은 산에 사는 ’기인‘ 28명을 발로 뛰며 인터뷰했다. 소설가 이외수, 한승원이란 익숙한 이름부터 낯선 이들까지 이목을 사로잡는 이야기가 적지 않다. 먼저 독자들이 궁금해 할 이들의 마인드는 역시나 싶게 독특하다.

“돈을 모아 놓고 살지는 말자는 기본 수칙을 갖고 사는 사람입니다. 돈 생기는 족족 쓰는 것이죠. 10만원이 생기면 책을 사고, 20만원이 생기면 음반을 삽니다. 30만원이 생기면 차를 사고요, 100만원이 생기면 오디오를 사는 식이죠.“ -소리꾼 권재은(51세).

“서울에 살면서 한계점 같은 것이 왔어요. 그간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글을 써왔는데, 그렇게 써서는 한계가 너무도 분명해 보였어요. 이젠 정말 쓰고 싶은 글을 써보자 하는 절박한 욕구가 있었던 거지. 그래서 기존에 내가 먹고살아왔던 삶, 타인들과 관계된 삶, 이 모든 것을 접었어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내려왔다, 이렇게 되는 거지.” -소설가 한승원(전남 장흥의 한 해변 산자락 거주)

책에 따르면 시인 도종환은 ‘구구산방’이란 황토집에서 산다. 구구, 한글로 거북이 두 마리다. 느리게 가기의 천재들인 거북이처럼 태연하게 살자는 뜻으로 풀이 된다. 그가 산으로 들어온 이유는 중한 병 때문. 5년이 지난 지금 병을 거뜬히 떼어냈다.

“산에 들어온 초기엔 참 힘들고 막막했습니다. 무섭고 외롭고 괴로웠습니다. TV나 신문도 안 들어오는 적막한 숲속에서 오직 혼자 지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도리 없이 견뎌야만 했죠. 그러다가 서서히 조용하게 지내는 시간들이 좋아지기 시작하더군요. 산중의 고요와 평화 속에 혼자 책을 읽는 그 시간들이 소중하게 다가왔죠.”

책엔 개에게 글을 읽어주는 낙으로 사는(?) 소설가 김도연씨. 목공예를 하며 지리산에서 20년째 지내는 김용회씨. 촛불만 켜고 18년을 살아온 김종수씨 이야기가 있다. 그뿐인가. 날마다 활 쏘고 창을 휘두르거나 죽자사자 ‘남근’을 깎는 스님 사연도 있다.

시인 이원규에 다다르면 웃음이 터질지 모른다. 시인인 그는 지리산 구례의 한 마을에 산다. 집세 50만원. 극히 단출한 삶이다. 저자가 생활비를 묻자 이렇게 답한다.

“대략 20만원이면 혼자 살기에 거뜬하더군요. 입산 초기에 원고료 수입이 월 10만원도 안됐는데, 부족한 경비는 날품을 팔아서 충당하곤 했죠. 절 짓는 현장에서 노가다 인부로 일하는 식으로 말이죠. 돈들 일 없는 게 산골이라서 별 문제 없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타는 오토바이다. 한 대도 아닌 두 대인데, 그 중 하나가 BMW이다. 모델명 K1200LT. 전에 타던 기종은 1,500만 원짜리 할리 데이비슨이었다. 할리를 처분하고 돈을 보태 2천만 원을 주고 산 보물 1호다. 재미있다. 강아지와 닭을 키우며, 집세 월 5만 원짜리 시골집에 사는 주인의 호사란.

“어려서부터 오토바이에 땔나무를 싣고 다녔어요.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을 가르는 맛도 좋지만 경제적인 면도 매력이죠. 버스나 기차를 타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드니까요. BMW는 적재 공간이 넉넉해 텐트며 취사도구를 간단히 실을 수가 있습니다.”

자연 속에 살면서 어떤 점이 행복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이외수 작가의 답 역시 범상치 않다.

“나무건 바위건 돈 달라고들 안 합니다.(웃음) 도시에서와는 다른 겁니다. 아침마다 밤마다 해와 달은 웃고 뜹니다. 자연을 바라보면 뭐 하나 찌푸리고 있는 게 없어요. 초연합니다. 저절로 자연에게 배우고 되면서 사람마저 초연해지게 되죠. ”

‘자연에로의 귀의’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 이라면 읽어봐야 할 책이다. 먼저 간 선배들로부터 한 수 배워야 할 테니까.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소음과 공해 그리고 온갖 이전투구에 지친 도시인들은 책을 통해 모처럼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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