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365-38] 100년 '웃음의 유통기한' 지닌 책
[책읽기365-38] 100년 '웃음의 유통기한' 지닌 책
  • 김지우기자
  • 승인 2009.05.20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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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촌철살인


[북데일리] 100년이 넘어도 유효한 촌철살인'.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끼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문학사상사. 2001)의 책 소개는 이 한 줄로 모자람이 없다. 한 독자가 책을 소개한 이 문장을 조금 손본다면 '유통기한 100년의 웃기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다가 피식 웃게 되는 상황. 독서의 큰 즐거움이다. 정확히 36쪽에서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웃음을 이해하기 위해선 책에 대한 정보가 필수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고양이가 화자다. 고양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 눈이 예사롭지 않다. 첫 장 제목부터 '인간이란 족속과의 첫 대면'이다. 특히 다음 대목을 보면 이 고양이가 얼마나 범상치 않은 '명물'임을 알 수 있다.

"나는 고양이다. 쥐는 절대로 잡지 않는다. 인간은 오만해져 있다. 좀 더 인간보다 강한 내가 세상을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발칙한 이 고양이의 눈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한심한 '족속'은 주인이다. 고양이의 관찰에 따르면 주인은 뭘 잘 하지도 못하면서 이것저것 좋다는 건 다 해보는 사람이다. 한번은 그림에 도전했는데, 귀가 얇은 주인은 친구의 말에 솔깃했다. 친구는 유명화가 말을 동원, 묘사를 잘 하는 것이 그림을 잘 그리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로 인해 고양이를 실소하게 만든 사건이 일어났다. 고양이가 낮잠을 자다 뭔가 인기척이 있어 실눈을 뜨고 봤다. 알고 보니 주인이 자신을 보고 열심히 스케치하고 있다. 하필이면 자신이 묘사의 대상이 된 것이다. 움직일 수도 잠을 더 잘 수도 없는 상황.

"나는 이미 충분히 잠을 잤어. 근데 하품을 하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군. 그러나 모처럼 저렇게 주인이 열심히 붓을 잡고 있는데, 움직이면 미안하잖아. 꾹 참고 있으려니 너무 힘들어."

난데없이 친구가 하랬다고 갑자기 묘사를 하는 주인의 못 말리는 행동은 그렇다 해도 슬쩍 그림을 보니, 너무 엉망이었다. 고양이의 말.

"아무리 못생긴 나라도, 지금 이 집주인이 그려내고 있는 것 같은 저런 묘한 모습이라곤 아무래도 생각할 수 없다."

고양이가 본 주인은 재주도 없을 뿐더러, 허영심만 가득한 사람이다. 고고한 척, 잘난 척 하지만 실은 속물이다. 한마디로 고양이가 보기엔 가관인 셈이다.

주인집 '사모님'과 대화를 하는 모습을 묘사한 장면 역시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감히' 아내 앞에서 코털을 뽑더니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한다.

"주인은 태연한 얼굴로 코털을 한 가닥 한 가닥 정중하게 원고지 위에다 심어놓는다. 살이 붙어 있는지라 바늘을 세운 것처럼 선다. 주인은 생각지 않은 발견을 하고 감탄했는지, 훅 불어본다. 접착력이 있어서 결코 날아가지 않는다."

남이 보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 진정한 모습이다. 혼자 혹은 지인들과 있으면서 벌이는 구리고 잡스런 행동들. 고양이는 슬프고 황당하다. 독자 역시 웃으면서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인간에 대한 통렬한 풍자가 향하는 곳은 바로 내 자신이기도 하니깐.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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