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포토] 인생여정을 돌아보게 하는 ‘배론성지’
[WP포토] 인생여정을 돌아보게 하는 ‘배론성지’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7.04.28 00: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배론성지 중심부의 연못, 맑은 물에서는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었다.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인생길은 순례의 길 서두르지 마십시오. (중략) 인생여정에는 동서남북, 사해팔방, 춘하추동, 생로병사, 유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가 있습니다. 어느 과정도 생략할 수 없고 모두 거쳐야만 목적지에 이릅니다. 인생여정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 기도나 명상을 하며 걸을 수 있는 원형 미로

충북 제천 ‘배론성지舟論聖地’ 초입 왼쪽에 있는 ‘양업교’를 건너면 볼 수 있는 기도문 중 일부다. 인생여정에 대한 이 글을 읽은 후 바닥에 원형으로 그려진 미로를 따라 걷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천천히 걸으면서 그 동안 목적지에 가기 위해 급하게 서둘렀던 일상을 돌아보게 된다. 놀이처럼 가볍게 시작한 미로걷기가 기도나 명상을 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 배론성지 초입에 있는 양업교와 너른 잔디밭

배론은 지형이 ‘배 밑바닥’처럼 생긴 데서 유래한 말이다. 배론성지의 서쪽에는 주론산(903m)이 솟아 있다. 이 산의 정상에서 정동쪽으로 이곳 성지 골짜기가 내려다보이는데, 그 지형이 배의 밑바닥과 비슷하다.

미로 위쪽으로 너른 벌판이 비스듬히 펼쳐지고 저 멀리 성모자상이 보인다. 미소를 띄고 있는 성모와 웃고 있는 아기 예수의 모습이 보는 이에게 편안함을 준다.

▲ 드넓은 잔디밭 위의 성모자상

그 오른쪽에 위치한 대성당에서는 4월 26일(수)에 ‘최양업 신부 가경자 선포 1주년 기념미사 및 오라토리오 공연’이 열렸다. 최양업(토마스, 1821∼1861) 신부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사제이고, ‘가경자’는 시복 심사에서 '영웅적 성덕(heroic virtue)'이 인정된 '하느님의 종'에게 붙이는 존칭이다. 국내에서 순교자가 아닌 인물이 가경자로 인정된 것은 최 신부가 처음으로 2016년 4월 27일에 교황청이 선포했다.

▲ 배론성지 대성당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

대성당을 나와 위쪽으로 올라가면 최양업 신부 조각공원이 있다. 짧지만 위대했던 최양업 신부의 일생을 30여 장의 벽화를 통해 알 수 있다. 초기 천주교 순교자들의 희생에 잠시 숙연해 진다. 성지의 입구 오른쪽에는 최양업 신부의 묘도 있다.

▲ 최양업 신부 조각 공원,뒷쪽으로 신부의 일생을 담은 벽화가 보인다.

배론성지는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천주교인들의 은둔지였다. 이때 다산 정약용의 셋째 형 정약종에게서 천주교 교리를 배운 황사영은 이곳 토굴에서 편지를 썼다. 조선 천주교회의 비극을 중국의 북경 주교에게 호소하는 내용으로 이것을 '황사영 백서'라 부른다. 하지만 이 편지는 발각되었고, 그는 대역죄인으로 몰려 능지처참을 당했다.

▲ '황사영 백서'를 쓴 순교자 황사영 기념탑

또한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학교인 성요셉 신학교가 세워진 곳이다. 이런 이유로 이곳은 교회사에 있어 중요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교육적인 면에서도 가치가 높다. 널찍하면서도 정갈하고 고즈넉한 성지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도 부담없이 산책하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인생의 여정을 디디듯이 묵묵히 걷다보면 마음까지 편안해 진다.

▲ 아름다운 구조의 대성당 내부, 마침 혼자 기도 중인 사람이 있었다.

‘순례자들의 집’은 2004년 제천시장으로부터 ‘자랑스러운건축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하루 전에 예약을 하면 이곳에서 식사도 할 수 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