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 이런 일이?] '꽁치물고 알몸포복' 벌 받는 승려
[책속에 이런 일이?] '꽁치물고 알몸포복' 벌 받는 승려
  • 김지우기자
  • 승인 2009.03.29 2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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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의 고문형벌> 범죄를 통한 사회인식

 
   
 

"새우(海老-에비)와 모양이 비슷하고, 피부색이 붉어진다 해서 붙인 이름. 죄인의 윗도리를 벗기고 양팔을 뒤로 돌려 묶은 상태로 앉힌 뒤에 허리와 머리를 최대한 앞으로 굽히게 하여 양발이 턱과 밀착될 때까지 밧줄로 묶어 고정시키는 방법이었다."

[북데일리] <에도시대의 고문형벌>(어문학사. 2009)가 소개한 고문의 한 종류다. '에비제메(海老責)'라 불린 이 고문은 극심한 고통이 수반되는 벌이었다.

책에 따르면 무리한 자세 때문에 처음부터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시간이 경과할수록 고통은 더욱 심해진다. 또한 혈액순환 장애를 일으켜 30분이 지나면 온몸이 보라색으로 변하고, 의식이 혼미해진다.

얼마나 고문이 심하던지. 여성의 경우 오히려 고문에 익숙해져버리면 황홀감에 빠져 고통의 표정이라기 보다 넋이 나간 듯이 입을 벌리고 대답을 못하는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고 한다.

책은 17세기 에도시대의 범죄 유형과 고문, 형벌의 절차, 방식과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당시 막부체제는 중앙집권체제를 완비한 후 사회체제와 치안을 다스리기 위해 하극상, 간통, 절도와 같은 범죄를 중죄시했다. 유교의 영향도 한몫했다.

책 제목이 보여주듯 책에는 세상에 있을만한 고문은 다 망라해놓은 듯하다. 책에 따르면 일본 중세의 형벌은 주로 목을 베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1467년 '오닌의 난'이후 전란기(난세)를 거치면서 잔인한 형벌이 생겼다. 대못을 박고 창으로 찔러죽이거나, 창을 죄인의 아랫도리에 넣어 입으로 나오게 하는 방법과 같은 형벌이 생겼다. 에도시대는 바로 이 전국시대의 형벌 풍습을 이어받아 희한한 범죄가 성행했다.

특이한 형벌 중엔 삼단기리도 있다. 죄인을 매달아 놓고, 허리를 칼로 벤 다음, 목을 치는 형태다. 허리가 잘리게 되면, 머리가 무거워 거꾸로 매달리게 되고, 그 머리를 칼로 다시 벤다는 것.

책엔 범죄 사례가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그를 통해 당시 사회상을 알 수 있다. 예컨대 '고쿠몬(효수형)에 처해지는 범죄엔 '아내가 남편에게 폭력을 행사하여 상처를 입힌 자'란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

간통 대목도 시사점을 준다. 당시 간통을 현장서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죽여도 무방했다. 또한 여자는 유부녀나 과부를 불문하고 신분이 낮은 남자와 정을 통하면 간통으로 간주했으나, 주인이 하녀와 정을 통하는 것은 간통으로 보지 않았다.

당시 감방의 모습과 풍경. 풍습도 자세히 묘사했다. 신참 죄수를 맞는 '신고식'도 눈길을 끄는 대목. 간수가 죄수의 결박을 풀고 발가벗긴 채로(옷은 팔에 든 채) 넣어주면, 다음과 같은 의식이 행해진다.

"안에서 기다리는 죄수가 나와 신참의 상투를 틀어잡고 강제로 엎드리게 하고 신참이 안고 있던 옷에 머리를 씌운다. 이어 신참 좌우의 팔을 양쪽에서 잡고 한 쪽 무릎을 등에 밀어 붙인다. 이후 노래를 불러 신고식의 서막을 알린다.'

승려가 여성을 범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중 한 절의 중은 나체인 상태로 말린 꽁치를 입에 물고 절 본당을 3회 기어서 돌게 하고 뒷문으로 추방당하는 벌을 

에도시대의 기독교 신자 학살은 일본 형벌 사에서도 서방 세계에 악명을 떨친 형벌이었다. 일본에 기독교가 전래된 건 1549년. 초창기는 유연했던 기독교와 관계는 1596년 첫 봉건권력에 의한 기독교인 처형인 '일본26성인의 순교'를 낳는다. 이어 1612년 도쿠가와 막부에 의해 전국적 규모의 기독교 금지령이 발동되면서 급속도로 심해졌다.

붙잡힌 신자들은 종신감옥에 있는 동안 물불 가리지 않는 고문을 당했다. 여자는 옷을 다 벗긴 채 음부를 태우기도 했다.

이중 '아나즈리'는 가장 잔혹한 형벌이었다. 단숨에 목숨을 끊는 고문에 비해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던 비참한 형벌.

"내장이 쳐져 바로 죽지 않도록 죄인의 몸을 밧줄로 단단히 말라 묶은 상태에서 작은 구덩이를 파놓고 죄인의 머리를 구덩이 안에 넣었다. 심한 경우 구덩이에 오물을 채워넣기도 했다."

저자 임명수교수(대진대 일본학과)는 서문을 통해 "에도시대 사회상은 물론, 당시의 도덕관, 가치관을 필터장치를 통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접할 수 있게 했다"며 "그로써 일본 풍속문화 연구와 일본인에 대한 이해를 높일 목적"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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