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365-31] 소유의 거미줄에 갇힌 삶, '그리드락'
[책읽기365-31] 소유의 거미줄에 갇힌 삶, '그리드락'
  • 김지우기자
  • 승인 2009.03.18 0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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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원 들여 만든 영화, 배급하려면 100배 비용


[북데일리] 다큐멘터리 <저주>는 감독이 218달러를 들여 집에서 노트북으로 만든 작품이다. 그러나 배급할 목적으로 음악에 대한 권리를 정리하는 데 추가로 23만 달러가 필요했다.’ (본문 중)

<소유의 역습 그리드락>(웅진지식하우스. 2009)은 이런 황당한 시츄에이션을 우리 앞에 던진다. 이 상황을 요즘 인기폭발인 ‘워낭소리’ 버전으로 바꿔보자. ‘워낭소리’의 대히트를 예감한 이충렬 감독이 데모 테이프를 들고, 영화관 공식개봉을 타진했다. 영화를 본 배급사에선 이렇게 말했다.

“저기, 저 장면... 소 파는 아저씨들 초상권 해결했나요? 할아버지의 아들, 며느리 동의는 다 받았나요? 음악 저작권은 취득 했나요. 영화가 상영된 후, 할아버지 집으로 사람들이 엄청나게 방문할지 모르는데, 그 문제에 대해 각서는 받았나요?” 

아마 이충렬 감독은 이 말을 듣는 순간, 입을 쩍 벌리며 뒤로 나동그라질지 모른다. 영화 한편에 그 많은 ‘허가’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저작권이나 초상권(포괄적으로 보면 소유권)에 대한 권리요구가 외국에 비해 크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외국은 전혀 다르다.

<소유의 역습 그리드락>은 ‘그리드락’이란 새로운 개념을 통해 ‘다중 소유’의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리드락’은 교차점에서 발생하는 교통체증,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을 말한다. ‘지나치게 많은 소유권이 오히려 경제활동을 방해하고 새로운 부를 가로막는 현상’이 저자가 내린 정의다.

소유권은 사유화다. 자본주의를 지탱해온 것은 사유재산이다. 자유경쟁을 촉진하고 새로운 부를 창출했으며 사회를 발전시켰다. 우리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너무 많은 소유권은 서로서로를 방해해 시장을 마비시킨다고 주장한다. 그 한 예는 다음과 같다.

‘1975년 이후 새로 건설된 공항은 몇 군데나 될까. 단 한 곳, 덴버 공항뿐이다. 어디에도 새 공항을 지을 수 없다. 토지 소유자들이 공항 건설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위에서 보기로 든 다큐멘터리 감독의 낭패감과 다르지 않다. 아마 그 심정은 ‘부모님이 병원에 입원해 생사를 다투는데, 교통체증 때문에 교차로에서 갇혀 있는 꼴과 다르지 않다.

'그리드락'의 황당한 풍경 중엔 ‘특허괴물’도 있다. 잘 하면 황금알인 저작권의 특성을 겨냥, 특허를 먹어치우는 괴물 기업이 있다는 것. 이 기업은 제품을 발명하거나 생산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은 형편없고 부실하지만 가치 있는 제품에 의해 권리를 침해달할 가능성이 있는 특허만 골라서 사들인다. 당연히, 그럼으로써 교차로의 정체를 더 부추긴다.

책을 읽다보면 난생 처음 보는 그리드락이란 트럭이 갑자기 독자 앞으로 돌진한다. 이어 여기저기서 그 트럭이 몰려들고, 이내 교차로를 메워버린다. 답답해진다. 그만큼 이 책은 그리드락의 문제점을 실감나게 전해준다. 현상을 분석해서 흥미로운 원리를 던져주는, 좋은 경제경영서로 손색이 없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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