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365-28]"미리본 무라카미 하루키의 '묘비명'
[책읽기365-28]"미리본 무라카미 하루키의 '묘비명'
  • 김지우기자
  • 승인 2009.03.09 1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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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뛰고 또 뛰어 납득할 장소에 도착하는 것"

 

[북데일리] [책속에 이런 일이?] 근 10년 만에 하루키 책을 읽었다. 10년 사이에 소설과 에세이집 몇 권을 낸 걸로 기억하고 있다. <해변의 카프카>는 읽다 말았다. 당시 책을 읽을 처지가, 이렇게 말하면 불성실하게 들리겠지만, 아니었다. 책 자체도 별 감흥을 일으키지 못했다. 당시 든 생각은 이랬다. 내가 변한 걸까, 하루키가 달라진 걸까. IMF이후 우린 생존과 씨름했다.

생각해보니 더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하루키는 이제 그만 읽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점. 내 삶 특정기간에 하루키의 모든 책을 읽었으니, 하루키도 이해해주겠지, 그런 심정이었다. 아니, 하루키야 이제 그만 책을 내라고 당부하고 싶었다. 그래도 그는 끊임없이 책을 냈고, 어느덧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들어섰다.

하루키 신드롬이 몰아칠 때, 난 적어도 그보다 몇 년 앞선 세대이긴 했지만, 누군가는 그를 폄하했다. 엄청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라는 이유가 컸던 것 같다. 그러나 하루키는 비난이라는 빗발을 뚫고 정상에 올랐다. 소설가로서 달리고 달린 덕일 것이다. 이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문학사상. 2009)를 자신의 회고록이라 이름 지은 사실에 긍정하는 이유다. 그는 마라토너로서 달렸고, 달리기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은, 소설쓰기와 자신을 말하고 있다.

이 책은 하루키의 진면목을 드러낸 작품이다. 하루키가 왜 달렸는지에 대해선 몰랐지만, 마라톤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처음엔 생경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달리면서 '생각'하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니 그다웠다. 마치 재즈가 그다웠듯이.  그렇다해도 일단 독자의 관심은 그가 왜 달리기를 할까 이다. 직접적인 동기는 다음과 같다.

'세 번째 소설 <양을 둘러싼 모험>이 호평을 받고 전업 소설가로 자신을 얻었으나 심각한 문제는 건강의 유지였다. 아침부터 밤중까지 책상에 앉아서 원고를 쓰는 생활을 하게 되자 체력이  점점 떨어지고, 체중은 불어났다. 이제부터의 긴 인생을 소설가로 살아갈 작정이라, 체력을 지키면서 체중을 적절히 유지하기 위해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p60

그러나 단순히 체력 때문이었다면, 철인들이 나 할 법한 마라톤 풀 코스를 25회나 완주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진짜 답은 다음 대목이다.

"어느날 갑자기 나는 내가 좋아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내가 좋아서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주위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영향받지 않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왔다." p228

책은 하루키에 대해 새롭게 몇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그가 소설을 쓰기 전엔 음식점 주인이었다는 점. 하루에 무려 100킬로미터 마라톤을 완주한 점. 마라톤에서 더 나아가 트라이애슬론을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책은 '달리는 일'에 대한 소회와 의미를 하루키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루키 방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이나 글로 표현할 필요가 없을 터이다. 그의 작품을 많이 읽었던 이들은 공감할 것임으로.

대표적인 사례는 100킬로를 뛴 '울트라 마라톤' 체험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나는 인간이 아니다. 하나의 순수한 기계다. 기계니까 아무것도 느낄 필요가 없다. 오로지 앞으로 나갈 뿐이다'라는 말로 당시의 고통스런 상황을 돌아봤다. 또한 그 기록에 도전한 뒤 "뭔가를 상실했고, 다른 장소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고 회고했다. 그로 인해 하루키는, 그가 '러너스 블루'로 이름지은 우울증 혹은 후유증을 앓았다.

그는 책 말미에 마라톤과 소설 그리고 인생에 대해 방점을 찍는 말을 남겼다.

"기록도 순위도 평가도 모두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그리고 시간과 세월을 들여, 그와 같은 레이스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서 최종적으로 자신 나름으로 충분히 납득하는 그 어딘가의 장소에 도달하는 것이다."

하루키는 "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며 다음과 같은 묘비명을 밝혔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마지막 문장의 의미는 그의 삶에 대한 자세를 보여준다. 또한 이 책이 도전과 인내의 미덕을 알려주는 자기계발, 소설쓰기의 고통을 엿보는 글쓰기, 인생을 관조하는 에세이로 읽힐 수 있음을 함축하고 있다.

하루키를 마지막으로 읽은 건 <렉싱턴 유령>이다. 그 중에서 '얼음 사나이'의 일부 장면을 몇 번이나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이 책에 대해 하루키 독자들은 이렇게 느끼지 않을까. '세월이 흘렀건만 그는 변하지 않았다. 나도 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서로 성숙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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