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책읽기-17] 아...죽은 엄마가 사랑한 남자
[365책읽기-17] 아...죽은 엄마가 사랑한 남자
  • 김지우기자
  • 승인 2009.01.29 2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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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끝나지 않았다>...인생은 글쓰기 같은 것

"평생토록 정신없이 당신을 찾아 헤맸어요. 하지만 나에게 당신은 없었어요. 배에도, 가슴에도, 다리에도, 목구멍 속에도. 그 어느 곳에도, 당신의 부재가 너무 깊게 각인된 나머지 내 속은 텅 비어 버렸죠. 내 몸은, 그러니까 당신에 대한 그리움 자체였어요." p7

[북데일리] 신간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뮤진트리. 2009)의 전편에 흐르는 기조는 사무치는 그리움이다. 주인공은 엄마에 너무나 목말라 한다.

서른 살의 알리스 그랑제. 그녀는 엄마가 어떻게 죽었는지 모른다. 너무 어릴 적 일이다.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아빠와 산다. 부모 중 한 분이 없으면 가정에 웃음이 사라진다. 아빠와 사이가 그랬다. 사랑한다는 말도 못하고 낯설고 어렵게 지내왔다. 그런데 어느날 알리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와 마지막 여행서 유언을 들은 것.

"그를 사랑했다, 알리스. 네 어머니는 그 남자를 사랑했어."

엄마는 병으로 죽기 전 아빠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했던 것이다. 아빠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빠의 외로움과 고통은 그 때문이었다. 알리스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엄마의 흔적을 찾고 싶었다. 그런데 아빠는 죽었다. 비밀은 봉인됐다. 남은 건 그 남자다. 책의 첫 페이지는 엄마의 연인에게 엄마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을 묻는 독백형식으로 펼쳐진다.

[어떤 분인지 말씀해 주세요. 그녀가 당신을 바라볼 때, 당신이 그녀를 바라볼 때, 당신이 그녀를 뜨거운 눈길로 바라보았을 때, 그녀의 눈동자는 무슨 색이었는지. 그녀가 당신에게 빠져들었을 때 어떤 모습이었고, 좋다고 말할 때나 작별 인사를 할 때 어떤 표정이었는지. 약속 장소에는 일찍 나왔나요, 아니면 늦은 편이었나요?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했나요? 그녀는 상냥했나요? 옷은 어떻게 입었죠? 섹시했어요? 명랑했나요? 마음이 여렸어요? 그냐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어떻게 아셨죠? 정확히 어떤 순간에 서로 알게 되었어요? 처음 나눈 사랑의 밀어는 무엇이었어요? 무슨 이야기들을 나눴나요? 그녀에 대한 이야기? 아님 당신에 대한 이야기? 내 얘기는요?....]

엄마를 사랑했던 남자의 이름은 에마뉘엘. 독자라면 어떻게 할까. 궁금증을 안은 채 살아갈까, 아니면 남자를 찾을까. 알리스의 혼란스러움과 절실함을 보여주는 장면의 압권은 다음이다.

[어머니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 본다. 블랑딘, 그 다음은 그 남자의 이름, 에마뉘엘, 그 다음은 내 이름 알리스. 세 이름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블랑딘, 에마뉘엘, 알리스, 여러번 되뇌어 본다. 쉬지 않고 자꾸 이어 부르니 세 개의 이름이 하나의 이름처럼 들린다. 브랑디네마뉘에랄리스. 부드럽고 신비한 하나의 이름에 세 개의 삶이 이어져 하나의 빛에 비춰진다.] p98

결국 알리스는 엄마의 연인을 만난다. 그 남자로부터 엄마를 하나씩 기억한다. 그 남자와 알리스와 공통점은 둘 다 엄마를 간절하게 기억한다는 점이다. A는 B를 절실하게 사랑한다. C도 B를 절절히 사랑한다. 그럼 A와 C는 어떻게 될까. 사랑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 운명을 작가는 다음과 같은 말로 암시하고 있다.

[인생은 글쓰기와도 같아서 찾으려 했던 것은 찾지 못한 채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되고, 결국 당황스러울 만큼 놀랍고 신비한 그것이 아름다움을 자아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확실해 보였다. ] P132

그를 만나고 알리스는 "행복은, 자신이, 살아있는 사람들의 나라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며, 그것으로 무한한 전율을 느끼는 것이리라"라고 정의한다. 이어 "어머니는 마침내 텅 빈 가슴속에서 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과연 독자들은 이런 알리스를 어떻게 이해할까.

작가는 로랑스 타르디외. 1972년생이다. 6년 전 소설을 시작했고 세편을 냈다. 출판사는 작가를 '지중해의 푸른 빛을 닮은 작가'로 소개하고 있다. 번역자 길혜연씨의 말로 이 책의 평을 대신한다.

 "글을 옮기면서 이 글이 내가 쓰는 것인지 로랑스 타르디외가 쓰는 것인지 알리스가 쓰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소설 번역이 주는 매력이자 함정이며, 기쁨이자 고뇌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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