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포스트잇] 우리는 스스로 제조한 폭탄을 제각기 품에 안은 채...
[책속의 포스트잇] 우리는 스스로 제조한 폭탄을 제각기 품에 안은 채...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7.02.28 17: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리문 안에서> 나쓰메 소세키 지음 | 유숙자 옮김 | 민음사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자주 아파본 사람은 이해할 것이다.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은데 사람들이 안부를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난감한 경우가 있다. 괜찮다고 하자니 사실이 아니고 여전히 아프다고 하자니 그 또한 선뜻 내키지 않는다. 약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기억될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소설로 유명한 일본의 근대 작가 나쓰메 소세키도 이런 고민에 싸여 지냈다. 그는 평생 동안 크고 작은 병에 시달렸는데 그를 찾아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병은 다 나으셨습니까?” 하고 물어봤다.

그는 자주 똑같은 질문을 받으면서 대답을 망설였다. 자신의 건강 상태를 나타내 줄 적당한 말을 떠올리기가 힘들어서다. 결국 그는 언제나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글쎄요, 그럭저럭 살아 있습니다.”

이처럼 이상한 답변을 지속하던 어느 날 한 지인으로부터 “원래의 병이 계속되고 있는 거”라는 말을 듣고 "병은 아직 계속 중입니다”로 인사말을 바꿨다. 그리고 그 ‘계속’의 의미를 유럽의 대란 (제1차 세계대전)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저는 마치 독일이 연합군과 전쟁을 하는 것처럼 질병과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당신과 마주 앉을 수 있는 건 천하가 태평스러워졌기 때문이 아니라, 참호 안으로 들어가 질병과 눈(眼)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몸은 난세입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P.86)

듣고 보면 재미있는 설명인 듯도 하고 다시 생각해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언제 끝날지 모를 전쟁과 같은 질병을 안고 사는 사람의 생활은 어떠할 것인가. 그는 생각한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 꿈결에 제조한 폭탄을 제각기 품에 안은 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죽음이라는 먼 곳으로 담소하면서 걸어가는 건 아닐까. 다만 무엇을 그러안고 있는지 타인도 모르고 자신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행복한 거겠지.” (P.87)

짧은 글을 통해 질병과 죽음, 인생의 의미까지 생각해 보게 한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수필‘이라는 부제가 붙은 <유리문 안에서>(민음사. 2016)에 수록된 글이다. 이 책에는 그의 작가 생활과 작품 활동에 큰 영향을 끼친 병상 체험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에세이가 함께 수록돼 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