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아이를 전쟁으로 내몰았다
학교는 아이를 전쟁으로 내몰았다
  • 북데일리
  • 승인 2005.11.2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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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어떻게 아이들을 전장으로 내몰았나.`

섬뜩한 이 문장을 화두로 삼은 책이 나왔다. `전쟁과 학교`(삼인, 2005)라는 전직 교사 이치석씨가 쓴 것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책은 학교가 `교육`에 의해 유린된 상황을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책을 열면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서문이다. 그 첫마디는 학생들에 대한 `속죄`다. 저자는 교사 일선에서 물러난 다음, 퇴직금으로 산 술을 앞에놓고, 그가 가르친 아이들에게 깊이 빌었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푸른 하늘을 항해 가슴을 찢어버리고도 시원치 않을 순간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과연 한 교사를 그토록 부끄럽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국민교육이다. 학교라는 `생선가게`(생선은 선생의 단어를 바꾼 비유법)의 `썩은 간판`인 국민교육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적어도 내게는 `빨갱이`를 증오하라고 가르치던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부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학교는 `일제식민시대엔 친일 국민교육을, 그리고 분단시대엔 반공 국민교육으로 간판을 바꿔 달면서 민족 해방과 민족 통합을 저해하는 병원체 구실을 해왔다`는 주장이다.

책은 `근대 100년의 우리네 학교 풍경`과 `세계 대전 시대의 유럽 학교`라는 두 개의 얼개로 되어 있다. 전자엔 러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 그리고 한국전쟁까지 학교에 가해졌던 폭력과 광기를 담았다.

또한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을 기점으로 싹튼 국민국가는 반 인류적이고 반 평화적인 국가주의 전쟁 수행기관으로 전락했으며, 국가주의를 목적으로 한 `국민교육`은 지난 100년간 우리 학교역사에서 기형적으로 일관해왔다고 전했다.

교육은 일제 식민시대도 `국민교육`이었고, 분단시대에도 `국민교육`이었다.

그 시대에 국민은 하나의 인격적 존재인 우리민족의 집단자아를 분열시켰다. 황국식민으로 만들거나, 같은 민족을 `빨갱이`로 불러야 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우리에게 `우리`는 없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친일시대 학교의 음악수업은 전쟁의 풍경을 고스란히 학교에 옮겨놓은 `전쟁찬가`(일종의 아동용 군가)를 불러댔고, 한국전쟁 때 아이들은 운동회 때 전쟁을 상기시키는 `휘날리는 태극기` 게임을 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선 오히려 학교 밖에서가 더 `건전`했다.

일제시대에 학교에서 천황을 찬양하고 천황의 병사를 사랑하는 내용의 `전쟁찬가`가 불려질 때, 학교 밖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반달`과 `고향의 봄` 오빠생각` 같은 동요가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그 동요들은 바로 항일차원의 `어린이 운동`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학교는 야만적이고 반인류적인 전쟁폭력기구였던 시절이 있다. 이를테면 친일시대 일그러진 교육의 단면을 보면 잘 드러난다. `친일파`로 알려진 인촌 김성수는 오랫동안 종사해온 `교육자의 양심`에서 말한다며 학생들에게 `제군아, 의무에 죽으라`고 역설했다고 책은 전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저자는 `교육자의 양심`이란 말에 민족적 양심의 반역을 읽는다고 토로했다.

책에 따르면 한국전쟁 시기의 학교는 또하나의 전장이었다. 미국에 대한 환상 그리고 적, 즉 북한에 대한 증오는 한반도를 적대감으로 몰아넣었다. 한국전쟁은 저자의 말마따나 어른들의 전쟁을 아이들의 전쟁으로 옮겨놓은 셈이다.

1972년 한 학교의 체육수업은 전투와 다름없다. 교사는 턱걸이를 장려하면서, 대나무 창으로 허수아비를 쓰러뜨리는 북한 어린이와 비교하며, 이기기 위해 열심히 해야한다고 독려했다는 것.

저자는 전직 초등학교 교사로,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꾸는 운동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황국신민교육의 잔재인 `국민학교`란 명칭이 없어진 데에는, 학교와 교육에 대한 통렬한 인식을 갖고 있는 교육자의 노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에 대해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은 "교육에 있어 역사의식의 중요성을 일깨줘 주는 책으로. 진작에 나왔어야 할 소중한 성과"라고 소개했다.

저자는 이 책을 `학교역사`가 아니며 학교역사를 반성한 조그만 에세이일 뿐이라고, 밝혔지만, 시인이자 교육운동가인 김진경 선생은 다음과 같은 소개의 글을 전했다.

"오랜 세월 `국민교육`의 문제점에 천착해온 저자의 문제의식의 체계적 정리이자 새로운 진전이다. (중략) 책은 `국민교육` 극복의 문제의식을 세계사적 시각과 통일 시대의 시각으로 조명함으로써 미래적 문제로서 새롭게 제기하고 있다."

저자가 아이들에게 한 속죄의 뜻은 "과거 학교가 저지른 전쟁폭력의 진실을 밝히고 싶었을 따름"이라는 저자의 말에 함축되어 있다. [북데일리 제성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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