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365권-5] 통통쾌쾌! 죽은 다산의 축원
[1년365권-5] 통통쾌쾌! 죽은 다산의 축원
  • 김지우
  • 승인 2009.01.0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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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림돌 없이 화통하길... 지식인의 필독서

[북데일리] 우리는 다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정민 교수가 쓴 <다산선생 지식경영법>(김영사. 2008)은 지식인에게 숙제 같은 책이다. 책은 말 그대로 석학의 학문 지침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책을 어떻게 읽고 유용하게 활용할 것인가가 잘 나와 있다.

먼저 다산은 <초서권형>(초書權衡)을 권했다. '책을 읽으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자료를 초록하여 정보의 가치를 저울질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초록이다. 필요한 부분을 베껴 적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초>자 글자가 이상해서 사전을 찾아보니 나오지 않았다. 책엔 이 <초>자가 쇠금 변에 모래 사로 나와 있다. 초록은 抄錄, 즉 베낄 초, 기록할 록의 합성어다. 따라서 쇠금 변의 <초>자는 오자가 아닌가 싶다.

책은 다산의 지식을 10강으로 요약하고, 그 내용을 한자성어로 안내하고 있다. 다산이 메모의 중요성을 역설한 대목에서도 한자가 눈길을 붙잡는다.

예컨대 책은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을 메모하여 기록하는 것'을 <수사차록>(隨思箚錄)이라고 소개했다. 따를 수, 생각 사, 차자 차, 기록할 록이다. 생각에 따라 차록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차라는 글자가 어렵다. 차(箚)는 차자(箚子)의 차다. 차자는 간단한 서식의 상소문이다. 따라서 떠오른 생각을 간단히 정리한다는 뜻으로 풀이 된다.

책을 통해 본 다산은 호기심많고 열정적이었다. 그는 의문이 들면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이른바 <잠심완색(潛心玩索)>이다. 마음을 온통 쏟아 음미하고 사색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에 몰입하게 된 연유가 딱 그러했다.

다산은 강진 귀양 후 상례(喪禮) 공부를 위해 춘추좌씨전을 읽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나라에서 점을 쳤다는 이야기를 발견했다. 대체 왜 점을 쳤나, 점은 어떻게 쳤나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 주역에 입문했다. 그 뒤론, 주역에 미쳐서 하루 일거수일투족을 주역에 받쳤다. 그렇게 해서 완성한 것이 <주역심전>이었다.

다산은 꼼꼼하고 꽂꽂했다. 여기에 운치까지 있었다. 참 매력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을 절로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번은 아들이 닭을 기른다 하자 다산이 당부의 편지를 보냈다. 그 첫째는 '정보를 잘 (관찰하고) 분류하고 취합하라'였다. 편지 내용.

"네가 양계를 한다고 들었다. 닭을 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중략) 진실로 농서를 숙독해서 좋은 방법을 골라 시험해보도록 하라. 빛깔에 따라 구분해보기도 하고 횃대를 달리해보기도 해서, 닭이 살지고 번드르르하며 다른 집보다 번식도 낫게 해야 할 것이다."

아마 가보진 않았지만, 닭고기로 유명한 기업 '하림' 같은 대규모 양계농장에선 다산 식의 방법을 도입했을 터다. 다산의 못말리는 성품은 다음에서 드러난다.

"또 간혹 시를 지어 닭의 정경을 묘사해보도록 해라. 사물로 사물에 엊는 것. 이것이 글 읽는 사람의 양계니라. 만약 이익만 따지고 의리는 거들떠보지 않거나 기를 줄만 알고 운치는 모른다면 못난 사내의 양계인 게다."

닭 한 마리를 기르는 데에도 시와 '도'를 따졌으니, 얼마나 멋진 분인가. 그동안은 수많은 저서로 미루어 짐작컨대 고리타분한 학자로 생각하기 십상 아니었던가. 이와 관련 책에는 젊은 시절 '세검정'의 절경을 보기 위해 비바람을 뚫고 한걸음에 달려간 이야기가 나온다. 세검정의 빼어난 풍광은 오직 소낙비가 쏟아지며 정자를 휘감아 돌 때라고 한다. 해서 다산은 물줄기가 웅장하게 흐르는 세검정 정자에 앉아 술과 시를 읇조렸다.

책을 읽는 가운데 쉽고 재미있는 한자성어를 발견했다. <통통쾌쾌>(痛痛快快). 아무 걸림돌이 없이 회통 혹은 화통하라는 말이었다. 통통쾌쾌. 죽은 다산이 시름에 잠긴 이 백성을 위해 이 새해 아침에 지은 축원처럼 들린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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