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결국 파산'... 40년 역사 '종지부'
한진해운 '결국 파산'... 40년 역사 '종지부'
  • 오예인 인턴기자
  • 승인 2017.02.1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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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법원은 한진해운에 최종 파산선고를 내렸다(사진=한진해운)

[화이트페이퍼=오예인 인턴기자] 지난해까지 세계 7위 해운사였던 한진해운이 해운업황 악화와 유동성위기로 결국 파산했다. 1997년 설립된 이후 40년 만이다.

17일 서울중앙지법 제6파산부는 한진해운에 파산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한진해운이 주요 영업을 양도함에 따라 계속기업가치의 산정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보다 높게 인정돼 파산선고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지난 2일 법원은 한진해운에 대해 회생절차를 폐지하겠다고 공고했다. 이후 14일 동안 공고해 채권자 등 이해관계인들의 의견을 받았지만 16일까지 항고가 없어 결국 이날 파산이 확정됐다.

한진해운의 남은 자산과 인력은 대부분 현대상선과 삼라마이더스(SM)상선이 나눠 인수했다. 한진해운 최대 영업망인 미주·아시아 노선은 SM상선이 인수해 다음 달 영업을 시작한다.

파산 채권의 신고 기간은 5월1일까지며 1회 채권자 집회와 채권 조사는 6월1일 오후 2시 서울법원종합청사 3별관 1호 법정에서 열린다. 한진해운의 가압류 재산은 처분돼 채권자들에게 배당된다.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故) 조중훈 회장이 1977년 설립한 한진해운은 역사 속으로 퇴장했다. 수출이 급격하게 늘던 70년대부터 수송을 담당했던 한진해운은 한국 무역의 대명사였다. 1988년 대한상선과 합병 이후 1992년에는 국적선사로는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지난 2002년 셋째 아들 고(故) 조수호 회장이 뒤를 이었으나 2006년 별세했다. 이후 조 회장의 부인 최은영 회장이 회사를 맡았지만 물동량 정체와 같은 해운업황 침체로 유동성 위기가 심화했다. 2014년 창업주의 장남 조양호 회장이 경영권을 인수해 1조원을 투자하는 등 정상화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실패했다.

지난해 5월 자율협약이 개시됐지만 채권단과 한진그룹이 자금 지원 문제를 놓고 공방을 벌이다 결국 9월 법정관리에 내몰렸다. 현대상선과 합병을 통한 해운업 구조조정 논의도 있었지만 회생가치보다 청산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결국 청산 수순을 밟게 됐다. 법정관리 중 미주·아시아노선 영업망과 롱비치터미널 지분 등 주요 자산도 매각됐다.

산업 외적으로는 조양호 회장이 '비선실세' 최순실씨 측에 협조하지 않은 게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한편 한진해운의 몰락은 우리나라의 해운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한진해운 법정관리에 따른 물류 사태 이후 국내 해운사에 대한 신용도 하락이 영향을 주면서 한진해운의 노선과 영업망을 인수한 현대상선, SM상선 역시 물량을 확보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한진해운의 주력영업망이었던 미주노선 화주 수요가 다른 해외선사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60만 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를 가졌던 한진해운이 떨어져 나가며 한국 선사의 컨테이너 수송능력도 2016년 8월 106만 TEU에서 같은 해 12월 51만 TEU로 줄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금융논리에 치우친 금융당국의 결정으로 빚어진 한진해운 몰락이 결국 한국해운과 국가 신용도 하락으로 이어졌다"며 "글로벌 해운업체들은 기업 인수합병으로 덩치를 키우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 선사들은 화주수요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어 국내 해운 경쟁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뒤처질 것"으로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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