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일까. 신간 <시보다 매혹적인 시인들>(문학세계사. 2008)의 등장이 반갑다. 책은 이 시대 대표시인을 만난다. 문학기자 김광일 씨가 7년간 발품을 팔아 계간 ‘시인세계’에 연재했던 인터뷰 ‘zoom-in'을 엮었다.
그가 만난 시인은 총 23명. 고 김춘수 시인을 비롯해 고은, 황동규, 김지하, 문정희, 이성복, 함민복, 신경림 등 이른바 문단의 ‘큰 어른’들이다.
서문에서 “시인은 불편한 존재”라며 운을 뗀 저자는, 조금은 엉뚱한 말을 계속 늘어놓는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시인 축구팀은 준비운동을 하지 않는다.”
“시인들이란, 마블링이 보기에는 엄청 아름답지만 막상 입안에 넣고 씹어보면 아무런 맛도 느낄 수 없는, 외계인 같은 존재들이다.”
“시인은 엄살이 심하다.”
“시인은 노동생산성이 낮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유일한 사람들일 것이다.”
사실 이 같은 표현은 본문의 성격을 살짝 보여주는 힌트다. 보통 시인들하면 떠오르는 무게감 즉, 그들의 언어가 지닌 심각함을 저자는 배반한다. 소탈하고 때로는 짓궂게 시인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예를 들어 강은교 시인의 1970년대 사진을 보고 저자가 던진 말은 “사진 쥑이네요?”다.
“고은 시인은 술상에 있는 밥그릇에서 손가락으로 연신 밥을 퍼서 입안에 넣었다. ‘안주로 먹으면 참 좋아.’ 그것을 보고 있던 장석주 시인이 말했다. ‘고은과 다른 시인의 차이는 다른 시인이 나이와 함께 화석화할 때고 고은 시인은 현재화하고, 내면의 역동성을 키워간다는 점이에요.‘ 비틀어 말하기 전문인 필자가 말했다. ’철이 없어서?‘”
세상에서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이 릴케라고 말하는 고은 시인의 말 사이에 김요일 시인이 “담배 좀 피우겠습니다”라며 끼어드는 상황에선 웃음이 난다. 이처럼 어깨에 힘을 뺀 글 덕에, 읽는 내내 정겹다.
2004년과 2005년에 각각 세상을 떠난 김춘수 시인과 이형기 시인의 육성을 들어볼 수 있는 점은 책의 또 다른 매력이다. 김춘수 시인이 후배들에게 하는 당부다.
“신통한 말이 있겠습니까, 어데...여태까지 한 말이 그게 그건데. 굳이 한마디 한다면, 지 쓰고 싶은 것, 쓰고 싶은 대로 써라, 입니더. 눈치보지 말고 써라. 나도 그렇게 해왔다. 무의미로 시를 쓴 사람이 어디 있느냐. 무척 많은 오해도 받아 왔지만 나는 썼다.”
책 한 권으로 시에 대한 없던 관심이 살아날 리는 만무하다. 그래도 이 책의 출간으로 분명해지는 게 있다. 이런 책이 세상에 나온 걸 보면 여전히 시를 읽고, 시인을 만나고 싶어 하는 독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곧 아직 희망이 있다는 뜻이다.
저자는 “세월과 함께 점차 야위어 가고 있는 모든 시인들에게 이 책을 바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 줄 더 붙일 수 있다면 ‘아직도 시를 읽고 사랑하는 고마운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사진제공=문학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