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근의 그 or 그녀] 김광석, 황우석 그리고 2016년 '오늘'
[한정근의 그 or 그녀] 김광석, 황우석 그리고 2016년 '오늘'
  •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16.12.07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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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어제 같은 오늘이 또 저물어 간다.

살다 보면 아내의 생일처럼 잊혀지지 않는 그 날이 있다. 아니 더 정확히 얘기하면 내 생일은 잊어버려도, 도무지 잊혀지지 않는 ‘그 날’이 있다.

1996년 1월 6일. 그가 떠났다.

그의 이름은 김광석. 누군가의 죽음이 남겨진 이들에게 고통일 수 있음을 깨달은 그 날은 내게 충격 그 자체였다, 그를 찾아 수없이 찾아간 대학로의 공연장 앞에서 왜 그리 울었을까. 내 젊음의 사랑 안에 그가 있었고, 내 젊음의 아픔 속에 그가 있었고, 내 젊음의 절망 뒤에 그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노래가 있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를 그리워한다. 어떤 이는 노래(뮤지컬 ‘그날들’), 어떤 이는 글(시집 ‘이럴 땐 쓸쓸해도 돼’)로써 그의 발자국을 추억한다. 2016년 오늘은 그가 떠난지 20년이 되는 해...

2006년 1월 12일. 그가 미웠다.

그의 이름은 황우석. 누군가의 거짓이 타인의 희망을 짓밟을 수도 있음을 깨달은 그 날은 내게 충격 그 이상이었다. 그가 자신의 업적이 거짓임을 밝히는 TV 속 기자회견을 보면서 왜 그리 웃었을까. 아픈 이들을 치료해줄 구세주, 이 나라를 부자로 만들어줄 슈퍼맨, 내 젊음을 구원해줄 모범답안의 존재감이 무너진 그 날은 이유없는 헛헛함으로 온 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간 순간이었다.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있고 그 거짓에 알게 모르게, 아니 알고도 모르게 끌려 들어간 사람이 있다고 주장하는 그의 뒷모습이 마치 우리 삶의 그림자처럼 기억된다. 2016년 오늘은 그가 무너진지 10년이 되는 해...

2016년 ‘오늘’. 그녀는 누구인가.

그녀들은 누구인가. 앞만 보고 살아온 내 인생이, 아니 곁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달려온 우리의 인생이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장롱 속 깊숙이 간직한 붉은 악마 티셔츠를 버리게 만든, 뉴스 보는게 부끄러워 딸내미 몰래 기사를 훔쳐보게 만든, 친구와 술잔을 앞에 두고 멍하니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게 만든 그녀들은 누구인가. 눈물이 났다. 웃음이 났다... 또 눈물이 나고, 웃음이 난다... 그 눈물의 의미가 갖고 싶은 헤게모니를 놓쳐서 나온 슬픔의 부산물인지, 그 웃음의 의미가 갖지 못한 헤게모니를 빼앗아 나온 기쁨의 부산물인지 조차 헷갈리는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도무지 끝을 알 수 없는 타락과 부패의 소식들 가운데 나침반을 상실한 우리의 일상이 그저 안타깝고 가여울 뿐이다. 내 동료보다 먼저 승진한 것이 미안한, 해외여행 못 보내드린 부모님께 죄송한, 전세금 안올리는 집주인이 고마운 우리의 소소한 삶이 이토록 순식간에 부정될 수 있음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세월이 흘러흘러 2026년 그 날에 내가 기억할 10년 전 ‘오늘’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녀가, 그녀들이 ‘아수라’로 만들었던 ‘오늘’에 대한 기억이 사뭇 궁금해진다. 국밥, 신발, 공주전, 포크레인, 시국선언, 촛불집회, 대국민담화 등의 단어가 더 이상 우리 삶의 검색어가 아니길 진심으로 기원할 뿐이다. 10년 후 그 날의 대한민국은 ‘오늘’보다 더 아름다울지, 10년 후 그 날의 우리는 ‘오늘’보다 더 정결할지...

2016년 ‘오늘’을 사는 젊음에게 부탁한다. 무릎 꿇어 부탁한다. 10년 후 그 날의 아름다움과 정결함은 바로 그대들의 몫이라고.

바르지 못한 이들에게는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 용기있게 전해주길 부탁하며, 힘들어 쓰러진 이들에게는 대가없이 순수한 위로를 전해주길 부탁한다.

아주 간곡히 절실하게.

 

* 자료=서강대학교 학보사 칼럼 발췌

[칼럼니스트 한정근 : 대중문화평론가 / (주)이슈데일리 CEO]

- 전문가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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