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조정래 부부가 출판사 차렸던 까닭
작가 조정래 부부가 출판사 차렸던 까닭
  • 북데일리
  • 승인 2005.11.16 09:14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년 후에야 나는 아버지가 10년 넘게 점심을 굶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뒤늦게 목이 메고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조정래의 글 `인생은 단 1회의 연극이다` 본문 중)

작가 조정래가 <젊은 날의 깨달음>(인물과사상사. 2005)에서 아버지를 떠올리며 털어놓은 가슴 아픈 사연이다. 조정래를 비롯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오슬로 대학 한국학 교수 박노자, 언론인 고종석, 작가 조정래, 언론인 손석춘, 물리학자 장회익, 법학자 박홍규, 건축가 김진애, 언론인 홍세화 등 9인의 젊은 날에 대한 고백을 담았다.

책에서 조정래는 ‘인생은 단 1회의 연극이다’라는 제목으로 아버지와 젊은 시절을 회고했다.

알려진 대로 대하소설 <태백산맥>(해냄. 2001)의 법일스님은 조정래의 아버지다. 대처승이었던 그는 타향에서 전쟁을 겪으며 가난과 추위와 싸워야 했다. 조정래의 말에 따르면 ‘자식을 탐해’ 전쟁 후에 소원대로 아들 둘을 더 낳아 8명의 자식을 거느렸던 아버지는 전쟁 후 고교교사가 됐지만 열 식구 생계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월급날이면 식구들이 외상으로 사먹은 쌀과 연탄값을 치르고 나면 빈털터리가 됐다.

“나는 그 쓰라린 고마움을 갚을 만큼 아버지에게 용돈을 넉넉히 해드릴 수 없었다. 직장벌이가 시원찮았고 책이 잘 팔리는 인기작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병상에서 태백산맥의 완간을 기다리던 아버지는 연재 1회분만 남겨둔 시점에 하직하셨다. 나는 인세수입이 많아지고 있었지만 용돈을 풍족하게 드리고 싶은 아버지는 안계셨다. 팔십 평생 제대로 된 호강한번 해보지 못하고 빼빼마른 몸으로 지긋지긋하게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언제나 속울음으로 가슴이 미어지고 죄스러움이 한없이 사무친다. 아마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죄스러움은 더 깊고 커져갈 것만 같다”(본문 중)

아버지에 대한 죄스런 마음으로 작가의 눈물은 그칠 줄 모른다.

젊은 시절 고생담도 담았다. 3~4년간 직장을 옮겨 다니며 생존을 위해 애썼지만 신인작가였던 그의 생활은 늘 불안했다. 궁리 끝에 출판사를 차렸다. 가방을 들고 직접 지방출장을 다녀야만 했기에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그 시절 동년배들에게 술자리에서 내가 출판쟁이로 전락해 더는 글을 쓰기 틀렸다고 손가락질을 한다는 말을 듣고 있었다. 아내와 둘이서 발악하듯 최선을 다했던 세월이었다. 마산에서 광주로 가는 막차에는 손님이 없었다. 짙은 어둠 속에 쏟아지는 비를 하염없이 내다보며 내가 왜 이러고 다니는가 하는 생각이 사무치며 눈물이 가슴을 줄줄이 적시고 있었다. 조금만 참아라. 조금만 참아라. 다 글을 쓰기 위해서다. 눈물과 함께 씹고 넘긴 말이었다” (본문 중)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큰 거목이 된 조정래의 젊은 날은 먹고 살기위해 감내해야 했던 눈물의 사투였음을 알 수 있다. 출판사를 넘기고 그토록 원했던 글쓰기에 본격적으로 매달리며 20년간 자청하여 ‘글감옥’에 들어갔던 조정래는 지금도 가장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글쓰기다. 특별한 취미 하나 없는 그에게 글쓰기란 본업이자 숙명이며 취미다.

“나는 가끔 어느 때가 가장 행복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나는 혼자서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놀랄 만큼 글이 잘 되었을 때 그 행복은 절정에 이른다”(본문 중)

`작가`의 운명을 타고난 조정래가 글쓰기에 쏟는 애정과 열정은 젊은 날의 그것과 견줄 만큼 여전히 뜨겁고 순수하다.

"인생이란 연습도 재공연도 할 수 없는 단 1회의 연극이다"

아들의 결혼식 날. 예식장 앞에 세워둔 메모판에 직접 적었던 이 말은 젊은 날의 고난과 가난이 그에게 준 ‘깨달음’의 문구였다.

(사진 = 해냄출판사 제공)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로즈 2019-08-28 11:38:25
조정래 작가님. 태백산맥 지금 누런색으로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