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화불량 시인이 뿜어내는 `고래의 향`
어느 소화불량 시인이 뿜어내는 `고래의 향`
  • 북데일리
  • 승인 2005.11.14 09: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인자격사칭 등 피고사건 1차 공판(05문지306) -서울복부지원 2005.11월-

判詩(판시) : 지금부터 가짜시인 박남철(이하 ‘假詩朴`)에 대한 “시인자격사칭등에 관한 법률위반”공판을 시작합니다. 피의자는 일어서서 생년과 주소를 말씀해 주십시오.

假詩朴(가시박) : 1953년 포항시 흥해읍 남성리 출생, 현재 서울시 중계동 무지개아파트 거주!

判詩 : 피의자는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야간여상 교사, 강원대 시간 강사, 보습학원 국어 강사를 전전하다 현재는 전업 ‘가짜시인’ 행세를 하는 게 맞습니까.

假詩朴 : 넹

判詩 : 글쿤여... 피의자는 1979년 ‘연날리기’로 등단, 1984년 ‘지상의 인간’, 1988년 ‘반시대적 고찰’, 1991년 ‘러시아집 패설’, 1997년 ‘자본에 살어리랏다’를 발표하면서 시인 행세를 해오다가 여의치 않자, 이후 8년간 피시통신 등 인터넷에서 갖은 독설을 퍼부은 사실이 있죠.

假詩朴 : 그러니더.

判詩 : 피의자는 오늘 무슨 일로 이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 알고 있습니까.

假詩朴 : 사고를 하도 많이 쳐가 혼갈리데이 리끼미.

判詩 : ㅎㅎ 그럼 검시 측 심문하시지요.

檢詩(검시) : 피의자는 등단 이래 5권의 시집을 냈지만 그 흔한 상 한번 타지 못하자, 시단에 앙심을 품고 갖은 기행을 일삼았다는데 사실입니까.

假詩朴 : 적어도 나 까마귀의 눈으로 보건대, 모든 인간은 추악하다. 모든 인간은 미완성이고, 모든 인간적인 행위도 미완성이다. 미완성일 뿐더러 추악하다. 추악할 것들을 아름답게 보는 눈이 바로 예술인데, 까마귀의 눈으로 보건대 예술 역시 추악하다. 더럽다. ?!

檢詩 : 예술의 뭐가 그리 추악해 보였나요.

假詩朴 : 요즘 시인들은 대중적으로 너무들 유명하다. 마치 몸 파는 창남, 창녀들 같이들 행동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적어도 내 가시 박힌 까마귀의 눈에는 그렇게들 보인다.

檢詩 : 그건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비주류 문인이 부리는 개꼬장은 아닌가요. 가뜩이나 시가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더욱 더 독자들 곁으로 다가가야 할 생각은 안했습니까.

假詩朴 : 비주류라니요? 이번에 나온 <바다 속의 흰머리뫼>(문학과지성사. 2005)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주는 창작지원금 받아서 쓴 것 모르셨구나. 그리고 뭐 독자? 얄팍한 감성의 똥구녁을 핥아서 시를 팔아먹으라고 내더러?? 시팔라고??? 시팔!

檢詩 : 넘 흥분하지 마시고요. 원래 성격이 그렇게 불 같으셨나여. 그리고 당신 동생 별명도 까마귀인 거 알고 계셨나염.

假詩朴 : 얘기하면 좀 길지. 내가 원래 좀 소심한 성격이었는데 어찌 살다보니까 이렇게 됐네. 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그런 거 있잖아. 고등학교 때도 그랬고, 방위시절에도 그랬고, 문단에서도 주욱~ 그랬지.

싸움에선 먼저 선방 날리는 게 중요해. 그러다 깨지는 건 결국 나였지만 말야.^^ 내 동생 재홍이가 까마귀였다니 몰랐네 정말. 나도 까마귀, 동생도 까마귀, 어머니와 할머니 친정도 까마귀들의 고향인 烏島里(오도리)... 흐음, 그러고 보니 백로들이 내 주위에 얼씬거리지 않은 이유를 알겠고만. 쩝!

檢詩 : 다음 시집은 까마귀 얘기로 채우는 것도 좋겠네요. 책 표지도 까맣게...

假詩朴 : 그럴까. 구미가 좀 땡기네. 건 그렇고 내가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줄게.

檢詩 : 쫑긋!

假詩朴 : 거 참 샌님처럼 그러지 말고, 나가서 한잔 빨면서 얘기하자고. 나도 숱하게 법원 들락거려서 이 재판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 환히 알고 있쥐.

“가짜 시인, 박남철! 무죄 파문!!” “되레 진짜 시인인양 하던 몇몇 시인들, 사기꾼으로 드러나 충격!!” “가짜 행세 진짜 시인 박남철, 이 기쁨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바칠 터!!” “검찰, 진짜 가짜시인 검거 위해 총력수사 다짐!!” “문단 원로들 나서 호소문 발표, 더 이상의 분열은 없어야 한다!!” “시민들, 가짜 시인 작품 불매운동 시작” “썩은 문단을 태우는 불길,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뭐, 이런거 아냐?

檢詩 : 재밌네여.

假詩朴 : 중광스님이 말여. 종단 감찰원에 소환을 당하신 일이 있었어.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종단 망신 죄목이라는 거야. 술 마시고, 고기 먹고, 여자와 놀아나고... 소 돼지 말 닭 개 등등 숱한 짐승들과 놀아났다고 주간지 기자에게 말했다가 기냥 파계되어버렸지.

檢詩 : ......

假詩朴 : 보르헤스의 소설을 보면 노예장사를 위해 노예를 해방시켜주는 역설의 얘기가 있지. 결국 노예는 끝나지 않는 도망자의 삶을 죽음으로 맞이하고, 노예장사 역시 가짜 노예해방을 위해 봉기하다가 비참하게 죽어가지. 권위는 권위를 낳고, 거짓은 계속 거짓을 양산하지. 난 그 역설과 가면의 틀을 깨고 싶었어.

한때 “차렷, 열중쉬엇, 차렷,//이 좆만한 놈들이......”하며 독자 길들이기에 나선 후, 문단에 까지 얼차려를 시키려다 피 좀 봤지. 허나 지금은 나도 많이 부드러워졌어.

檢詩 : 맞아요. 이번에 나온 새 시집에서도 고래등처럼 부드럽고 매끈한 정감들을 느낄 수 있었어요. 고래입처럼 아늑하기도 했구요. 근데 시집은 좀 팔리나요?

假詩朴 : 쭈아식,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항상 하는 말이지만, 일부러 내 시집 살려고 안 해도 된다. 돈 없는 독자놈들은 내 홈피에 가서 무료로 봐라. 사실 이번 시집은 오랫동안 바다를 항해한 늙은 고래등에서 쥐어 짠 龍涎香(향유고래와 같은 거대한 고래의 몸에서 나오는 향으로 소화불량 때문에 생긴다고 함-고진하 시인의 ‘용연향’-) 같은 것들이다.

檢詩 : 이제 고된 항해를 끝내시고, 속도 편안해지셔야 할 텐데요.

假詩朴 : 시 얘기를 안 할려고 했는데 내 시 ‘고래의 항진’ 들으면서 얘기 끝내도록 하자.

檢詩 : 뻘쭘!

假詩朴 : “꼬리로 바다를 치며 나아간다//타아앙......//갈매기 떼, 들, 들, 갈매기들 날고//타아앙......//어디 머리가 약간 모자라는//돌고래 한 마리도 꼬리에 걸리며//타아앙......//자기가 고래인 걸로 잠시 착각한 늙은//숫물개 한 마리도 옆구리에 치인다//타아앙......//입 안에 가득 고이는 새우, 새우들,//타아앙......//나는 이미 바다이고 바다는 이미 나이다//타아앙......//나는 이미 고래이고 고래는 또한 나이다//타아앙......//분별하려는 것들은 이미 고래가 아니다//타아앙......//분별하려는 것들은 이미 바다도 아니다//타아앙......//꼬리로 바다를 치며 나아간다//타아아아앙......//꼬리로 나를 치며 나아간다,//타아아아아아앙......”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칠포 지나 마음속 참포도 지나, 바다속의 흰머리뫼, 까마귀 깍깍거리는 오도! 그곳에서 일찍이 대자연이 불러놓은 오도송을 듣는다.

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림 = 박남철 첫 시집 <지상의 인간>(문학과지성사.1984) 표지에 실렸던 81년 작 `자화상`, 사진출처 www.washington.edu) [북데일리 김연하 기자]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