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홍규 "사명감으로 '장기려' 썼다"
손홍규 "사명감으로 '장기려' 썼다"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08.07 01: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설 출간..."양심지키는 사람들 기죽지 않고 살았으면..."

“장기려 선생을 한 명이라도 더 알게 하고 싶었습니다.”

[북데일리] 어느 봄 날, 사내는 책상 의자를 치웠다. 그 자리에 침대를 끌어다 놨다. 거기에 앉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쓰다 지치면 그대로 잠들었다. 잠에서 깨면 다시 썼다. 작품 마무리를 위해 몇 날 며칠을 그렇게 달려갔다. <청년의사 장기려>(다산책방. 2008), 손홍규의 두 번째 장편 소설은 그런 지난한 과정 끝에 나왔다.

소설가 손홍규. 그는 ‘차세대 입담꾼’으로 불리며 지금까지 소설집 <사람의 신화>와 <봉섭이 가라사대>, 장편소설 <귀신의 시대> 등을 펴낸 젊은 작가다. 이번 작품에서 그는 ‘살아있는 성자’로 불리는 외과의사 고 장기려의 삶을 그렸다.

작가는 탈고 후 한동안 크게 앓았다. 무리하게 내달린 탓이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까지 몰아세운 걸까. 5일 신촌 인근 카페에서 만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는 미학적인 입장에서 작품을 써왔어요. 그런데 이번엔 달랐어요. 의무와 사명감을 가지고 썼어요. 쉽고 재미있게 써서 많은 사람이 장기려 선생을 알았으면 하는 욕망이 컸습니다.”

장기려는 평생 의사 한번 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해 온 의사다. 실력 또한 최고였다. 우리나라 최초로 간 대량절제수술에 성공한 의사가 바로 장기려다. 의료보험의 효시인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만들기도 했다.

작가가 장기려를 처음 만난 건 5년 전. 잡지사에 기고할 글을 목적으로 <성산 장기려>를 읽었을 때다. 당시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민족의 고통을 보듬으려 희생적인 삶을 산 위대한 인물이 너무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벼르고 별렀다. 기회가 되면 꼭 소설로 장기려를 더 알리고 싶었다. 그러던 중 한 선배의 권유가 있었고, 2년 전 펜을 들었다.

하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공간이 작가에겐 너무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다. 도서관을 제 집 드나들듯 하며 외과 전공서적과 당시 역사를 다룬 책을 읽었다. 조금씩 들여다 본 책까지 합하면 무려 200권 이상이 그의 손을 거쳤다. 소설의 주 무대인 개성과 평양은 취재가 불가능해 당시 지도를 보며 머릿속에 담았다. 소설 속 생생한 수술 장면과 시대상 묘사는 그 덕에 가능했다.

이렇게 쌓은 사실 위에 작가의 상상을 입혔다. 처음에는 상상력으로 더 채우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상상력만으로 쓰기에는 장기려라는 인물의 무게가 너무 컸어요. 사실과 진실의 힘에 압도됐다고 할까요.”

소설은 장기려의 청년시절, 즉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의 삶을 집중적으로 묘사한다. 장기려가 1995년 타계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생의 반 정도만 다룬 셈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작가는 당시를 장기려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시기라고 여겼다. 그는 “장 선생의 월남 이후 삶은 당시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이미 결정됐다”고 전했다. 또 “만약 전 생애를 다뤘다면 에피소드를 모은 요약본에 그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 어느 때보다 혼신의 힘을 쏟은 작품이지만, 아쉬움은 있다. 작가는 “이왕이면 우리 곁에 있는 사람처럼 생생한 인물로 만들고 싶었는데, 역사적 인물로 묘사된 것 같다”며 씁쓸해 했다.

그래도 뿌듯한 건 사실이다. 특히 책을 보고 장기려를 알게 됐다는 독자들의 서평을 읽을 때가 그렇다. 그는 “글을 잘 썼다는 칭찬보다 더 좋았다”며 웃었다. 욕심을 하나 더 부려보면 이렇다.

“장기려 선생은 좋고 편한 길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어리석고, 실패만 하는 삶이었죠. 지금 이렇게 사는 사람들, 실패한 삶처럼 보이지만 양심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 장 선생의 이야기를 읽고 기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작가는 쌓인 피로를 털기도 전에 벌써 다음 작품을 구상 중이다. 장편을 하나 더 쓰고,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대하소설에 도전할 계획이다. 지금 그는 한 시대를 관통하기 위한 깊은 심호흡을 하고 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